친부모가 아이를 포기하더라도 그 방법에 따라 아이의 삶은 달라진다. 출생신고도 하지 않고 유기된 아이, 베이비박스에 남겨진 아이들은 대부분 입양 가정이 아닌 보육원으로 간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협력시설인 상록보육원에서 살고 있는 부성준(4·가명)군도 2013년 1월, 서울 관악구 베이비박스에 홀로 남겨졌다. 메모 하나도 곁에 없었다.
성준이는 종양이 뼈를 갉아먹는 ‘랑게르한스 세포조직구증’과 1년 넘게 싸우고 있다. 생명엔 지장이 없어도 꾸준히 치료하고 돌봐야 하는 병이다. 지난해 2월 볼거리인줄 알았던 병이 뼈를 갉아먹는 희귀병인 걸 알았을 때부터 성준이는 약을 삼켜야 했다. 독한 약이 몸에 들어오면 헛구역질이 났다. 약을 먹기 위해 저녁을 굶는 날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래도 밝다. 보육원에선 성준이를 “아플 때나 안 아플 때나 늘 씩씩한 아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씩씩한 아이도 정(情)에는 늘 목마르다. 사람과 헤어질 때면 늘 “안아 주세요”라고 어리광을 부리며 아쉬움을 못 감춘다.
친부모 선택 따라 운명 갈려
성준이 같은 기아(棄兒)는 보육원에서 자란다. 생활지도원들이 부모를 대신해 아이를 돌본다. 지도원이 열의를 가지고 돌봐도 가정에서 지내는 아이만큼 관심과 사랑을 받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지도원 수는 충분치 않고, 아이들도 부모가 없다는 걸 어릴 적부터 눈치 챈다. 보육원에서도 가능하면 아이를 입양 보내려 한다.
하지만 입양되는 기아는 보기 드물다. 아이 입양이 기아보다는 비기아(非棄兒)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다. 입양을 원하는 양부모 대부분은 보육원이 아닌 민간 입양기관을 찾는다.
민간 입양기관에서도 대개 자신들이 돌보고 있는 비기아를 입양하라고 권한다. 양부모들도 출생신고가 돼 있고, 위탁가정 등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온 비기아를 선호하는 게 보통이다. 기아는 새 가정을 만날 기회도 적은 셈이다.
기아는 경찰에 ‘버려진 아이’로 신고된다. 서울에서 홀로 남겨진 아이는 서울시립어린이병원에서 건강 진료를 받고, 서울시아동복지센터로 옮겨진다. 이곳에서 간단한 서류 절차를 밟아 보육원으로 간다.
보육원장은 기아의 후견인이 된다. 법원에 요청해 성과 본을 받아 아이의 출생신고를 한다. 법적 신분이 생긴 아이는 보육원에서 지낸다.
출생신고가 된 채 민간 입양기관에 맡겨진 비기아들은 상황이 다르다. 비기아는 민간 입양기관을 거쳐 위탁가정이나 임시보호소에서 양육을 받는다. 기아들이 지내는 보육원보다 가정의 모습에 더 가까운 곳이다.
베이비박스에 남겨진 아이들은…
서울 관악구 베이비박스를 관리하는 주사랑공동체에 따르면 2013년부터 4년간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는 연간 200명이 넘는다. 2014년에 253명으로 가장 많았고 지난해에도 223명에 이르렀다. 베이비박스를 찾은 친부모가 입양을 부탁하거나 아이를 되찾아가는 일은 드물다. 2012년부터 베이비박스에 남겨진 아이 75% 이상은 친부모의 얼굴도, 이름도 모른다.
입양하겠다는 양부모를 만나지 못하면 이 아이들은 만 18세까지 보육원에서 지낸다. 상록보육원에는 베이비박스나 길거리에 남겨진 아이 31명이 부모를 잊고 지내고 있다. 상록보육원에는 2012년부터 기아 34명이 들어왔는데, 1명은 친부모가 마음을 돌려 가정으로 데려갔고 2명은 양부모를 만나 입양됐다. 입양되는 기아는 이렇게 손에 꼽을 정도다.
기아에 대한 편견도 문제
기아가 다른 아이들보다 입양 기회가 적은 것은 입양을 원하는 이들 대부분이 유명하고 규모가 큰 민간 입양기관을 먼저 찾기 때문이다.
민간 입양기관에서는 출생신고가 안 된 기아는 받지 않는다. 친부모가 출생신고를 한 아이들의 입양을 전담한다. 이 가운데서도 12개월이 안 된 신생아를 입양 보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입양을 하려는 부모가 “반드시 기아를 입양하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기아는 만나기조차 쉽지 않다.
민간 입양기관과 기아를 돌보는 지역아동복지센터는 예산 규모와 인력에서부터 큰 차이가 난다. 대형 민간 입양기관 홀트아동복지회의 올해 예산은 약 70억여원이다. 같은 기간 서울시아동복지센터 운영비는 6억9000여만원에 그친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아동복지센터 담당자는 1명”이라며 “혼자 기아들의 입양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기아는 뭔가 마음에 걸린다”는 편견도 기아 입양을 꺼린다. 김혜경 동방사회복지회 입양사업부장은 “입양 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며 “입양을 원하는 부모 입장에서는 친부모의 배경과 아이가 태어날 때 상황을 전혀 몰라 아이를 들이기 불안한 마음이 들 수 있다”고 말했다.
글=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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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5-17 05:01 수정 2017-05-17 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