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독일의 전쟁영화 두 편을 봤다. 과거 반성에 인색한 일본과 그렇지 않은 독일의 태도가 그대로 읽혔다. ‘영원의 제로’(야마자키 다카시, 2013)와 ‘레드 배런’(니콜라이 뮐러쇤, 2008). 비록 시대배경은 각각 2차대전과 1차대전으로 다르지만 공교롭게도 둘 다 전투기 조종사를 통해 전쟁을 다뤘다. 일본제국군의 제로전투기, 정식 명칭 미쓰비시 A6M을 조종하다 가미카제 특공대로 자원해 산화한 조종사 이야기인 ‘영원의 제로’는 개봉 당시 일본에서조차 전쟁과 가미카제를 미화, 찬양한 영화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였다. 사실 영화의 내용을 보면 군국주의적 시각과 가미카제에 대한 찬양 함의를 품은 대목들이 눈에 띈다. 우선 제로에 대한 애정 표현. 영화 초반 내레이터는 제로가 당시 세계 최고의 전투기였으며 일본 해군은 세계 최강이었다고 자랑스럽게 회고한다.
둘째, 영화의 주인공격인 젊은이는 가미카제가 자살폭탄 테러에 지나지 않는다는 친구의 말에 자살폭탄 테러는 무고한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가미카제는 항공모함 등 막강한 적을 쳐부수기 위한 것이었던 만큼 완전히 다르다며 화를 벌컥 낸다. ‘보통국가화’를 내세우며 일본의 재무장, 나아가 군사 대국화를 추구하는 아베 신조 총리가 영화에 “감동받았다”며 영화를 지지한다고 선언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레드 배런’은 실제 인물로 1차대전 때 적아(敵我)를 통틀어 ‘에이스 중 에이스’로 추앙받은 독일 전투기 조종사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 남작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그의 전투기가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어 ‘붉은 남작(레드 배런)’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그를 영웅시하고 찬양하지만 독일이 일으킨 전쟁에 대해서는 반감과 비판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반성이니 현재에 대한 함의니 하는 문제를 접어두면 두 영화 모두 코끝을 찡하게 하는 대목이 있다. 영화가 끝날 즈음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죽을 걸 뻔히 알면서도 마지막 임무를 앞두고 처연하지만 결연한 표정으로 애기(愛機)에 올라타거나 조종하는 젊은이들의 얼굴이다.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
[영화이야기] <122> 일본영화, 독일영화
입력 2017-05-16 1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