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탄도미사일 ‘화성 12형’은 미국 본토를 직접 겨냥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위협이다. 무수단(화성 10형) 미사일 발사 성공 이후 1년여 만에 미국 본토를 겨냥한 미사일이 등장하면서 향후 미사일 기술 진전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북한이 국제정세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핵·미사일 일방향을 고집하는 것은 일단 김정은 체제의 존립기반과 관계가 깊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집권 이후인 2013년 3월 노동당 중앙위에서 핵무력 및 경제건설 병진 노선을 제시했다. 핵·경제 병진 노선 선포 4주년인 지난 3월 비망록에선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나갈 전략적 노선”이라고 했다. 체제유지 및 강화를 위해 여명거리 완공 같은 경제적 상징물과 함께 핵 능력을 지속적으로 갖출 필요가 있다.
15일자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화성 12형 발사 참관 후 “가장 완성된 무기체계가 결코 미국의 영원한 독점물로 되지 않을 것이며, 우리도 상응한 보복수단을 쓸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핵·미사일 고도화는 물론이고 미국을 공격할 수 있을 정도까지 기술 개발을 지속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미국과의 ‘담판’을 상정해 최대한 판돈을 키우려는 목적도 있다.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까지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무기 능력을 갖출 경우 대화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화 의제를 비핵화가 아닌 핵동결 등으로 유리하게 끌고 갈 수도 있다. 노동신문은 이날 정세해설에서 “우리는 조선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운명과 관련해 미국과 회계(셈)할 것이 많다”며 “그것은 우리와 미국 사이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더욱 큰 문제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속도가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는 점이다. ICBM을 완성하려면 핵탄두 소형화, 고출력 엔진, 단 분리, 대기권 재돌입, 핵탄두 기폭 등의 기술이 필요하다. 한때 전문가들은 북한이 ICBM을 완성하려면 5년 정도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북한은 1년2개월여 동안 핵심 기술을 상당 부분 습득했다.
북한이 지난해 3월 15일 지상에 세워둔 탄두 위에 고열을 가하는 실험으로 대기권 재돌입 기술을 습득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같은 해 3월 24일 대출력 고체엔진, 4월 9일에는 ICBM용 대출력 액체엔진을 지상에서 분출하는 실험을 했다.
변곡점은 그해 중순 찾아왔다. 북한은 6월 23일 무수단 미사일을 고각으로 발사해 재돌입 시 탄두의 내열성을 검증했다고 밝혔다. 이어 8월 25일에는 고체엔진을 사용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에 성공한 사실을 공개했다.
올해 들어서는 기술 진전이 더 빨라졌다. 북한은 지난 2월 고체엔진을 사용한 중장거리 미사일인 ‘북극성 2형’ 발사에 성공했다. 한 달 후에는 ‘백두산 계열 엔진’이라 알려진 신형 대출력 액체엔진 지상시험을 실시했다. 그리고 ‘화성 12형’ 발사로 엔진, 대기권 재돌입, 핵탄두 폭발 기술을 완성했다고 선언했다.글=김현길 조성은 기자 hgkim@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핵·경제 병진’으로 김정은 체제 강화 의도
입력 2017-05-15 18:10 수정 2017-05-15 2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