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한승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입력 2017-05-15 17:26 수정 2017-05-16 09:22

사진 한 장이 눈길을 확 사로잡았다. 그 전까지 한국 정치사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이라 신선하고 반가웠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등 참모진과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는 모습이었다. 점심 식사 후 와이셔츠 차림으로 참모들과 격의 없이 커피 한 잔 들고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었다. 커피는 각자 취향에 따라 따뜻하거나 차가운 걸로, 뚜껑도 덮거나 열거나 달랐다. 어찌 보면 별거 아닐 수도 있는 이 사진은 소통 부재의 시대, 대면보고마저 꺼렸던 전직 대통령의 모습과 대비되며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미국 드라마 ‘웨스트 윙’(백악관에서 대통령 집무실과 참모진 사무실이 있는 공간)에서나 혹은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에게서나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우리는 왜 이런 대통령이 없을까 하고 내심 부러웠던 장면이 우리 정치사에 매일 새롭게 쓰이고 있는 것이다.

반가운 파격은 취임 당일부터 시작됐다. 대통령으로서의 첫 기자회견. 문 대통령이 신임 총리 후보자와 비서실장 등을 직접 소개한 것이다. 앞으로도 중요한 사안은 국민들에게 직접 보고 드리겠다고 했다. 대통령이 후보자들과 비서실장을 소개한 뒤 바로 이들에 대한 일문일답이 이어졌다. 질문 내용은 물론 질문 순서까지 대부분 미리 정해졌던 예전의 기자회견과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였다. 이 역시 우리 정치에서 보지 못한 풍경이었다.

만 51세의 대통령 비서실장과 52세의 민정수석이 임명됐다. 젊은 청와대, 역동적인 청와대가 된 느낌이다.

국민들도 청와대를 가깝게 느끼기 시작했다. 그동안 국민들을 답답하게 했던 불통의 정치, 권위적인 정치가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긴다. 어려워 보였던 일이, 불가능해 보였던 일이 정말 하니까 되는 시대가 왔다. 그 출발이 좋다. 부드러운 파격, 반가운 파격이다. 이렇듯 국민들은 요 며칠 사이 정권교체로 인한 신선한 즐거움을 누리고 있지만, 그것이 문 대통령 개인의 스타일에만 의존한 것이어선 안 된다. 다음에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탈권위적이고 국민에게 다가가는 청와대가 되기 위해선 시스템의 변화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문화 분야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다. ‘블랙리스트’로 빛바랜 이전 정부의 ‘문화융성’과 달리 새 정부에선 진짜 문화융성이 일어나길 바란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블랙’이든 ‘화이트’든 명단 자체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정권과 이념적 성향이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팔 길이 원칙’을 준수하겠다는 약속도 지켜져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정부에서 문화의 위상을 높여야 할 것이다. 일자리 창출, 안보 문제 등 시급한 현안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문화 영역도 돌아보는 대통령이 되길 기대한다. ‘쉼표가 있는 삶’ ‘일상에서 문화를 누리는 생활문화의 시대’ 등 후보시절 공약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백범 김구의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오직 한 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다”고 말했다. 그가 꿈꾸는 나라에 높은 문화의 힘도 있기를 희망한다. 문화를 사랑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