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권 따라 경기 진단도 바뀌나

입력 2017-05-15 17:25
기획재정부는 지난 12일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5월호에서 “수출 증가세 지속, 경제심리 개선 등 긍정적 회복 신호가 증가하고 있으나 고용의 질적 개선이 미흡한 가운데 대외 통상 현안, 미 금리 인상 등 대내외 위험요인이 상존한다”고 현 경기를 진단했다. 그러면서 “추경 등 적극적 거시정책 등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 활성화와 민생경제 회복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최근 경기 상황을 고려할 때 추경을 편성할 이유는 없다”고 한 것에서 180도 달라졌다. 한 달 전 “2∼3월 취업자 수가 큰 폭 반등하며 1분기 고용 상황이 예상보다 양호하다” “우리 경제가 연초 부진에서 점차 개선되는 모습”이라고 했던 것과도 엇박자다.

최근 경제 지표들은 실제로 긍정적 신호가 많다. 수출이 올 들어 지난달까지 4개월 연속 두 자릿수 증가한 것을 포함해 6개월 연속 늘었다. 생산·투자·고용도 증가세다. 고용노동부가 15일 발표한 4월 노동시장 동향을 보면 취업자 수(고용보험 가입자, 일용직 제외)는 3개월 연속 30만명 이상 증가했다.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영향으로 감소세를 보이던 제조업 일자리가 두 달 연속 늘어난 것도 고무적이다.

기재부가 추경 편성을 놓고 입장을 바꾼 이유는 십분 이해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첫 업무지시로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토록 하고 10조원 규모의 일자리 추경을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권 입맛에 맞춰 경기 진단까지 바꿔서야 되겠는가.

국가재정법은 추경 편성 요건을 전쟁, 대규모 재해, 경기 침체, 대량 실업, 남북관계 변화 등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 선심 쓰듯 추경 편성부터 했다. 2000년 이후 추경을 편성하지 않은 해가 단 4년에 불과할 정도로 추경이 상습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특히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일자리 추경은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어서 ‘세금 먹는 하마’가 될 수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일자리 추경이 문 대통령의 공약이긴 하지만 올해 초에 비해 경기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경제 지표들이 호조를 보이는 만큼 추경을 서두르기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