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풍경이 바뀐다. 값비싼 선물은 물론 카네이션도 사라지고 직접 만든 동영상 편지, 교사와 학생이 함께하는 체육대회처럼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학교가 늘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 이후 첫 스승의 날인 15일을 맞아 일선 학교들은 법에 저촉되지 않으면서도 이날을 기념할 수 있는 다양한 대안을 선보이고 있다.
인천 만수북중학교는 이날 하루 수업을 하지 않는다. 대신 학급별 사제동행 활동을 준비했다. 3학년은 인근 인천대공원에서 졸업앨범을 찍는다. 촬영이 끝나면 등산을 하거나 자전거를 빌려 타고 교사와 학생이 함께 즐기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스승의 날 기념식은 없다. 대신 학교 예산으로 카네이션을 준비해 반장이 선생님 가슴에 달아주기로 했다. 3학년부장인 박정현 교사는 “(김영란법은) 교육이란 따뜻한 언어에 법처럼 차가운 언어를 들이대 재단한 것이어서 교사를 예비 범법자 취급하는 듯해 서글프다는 선생님들도 있다”며 “그래도 사제의 정을 나누는 시간을 만들고 싶어 다채로운 사제동행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학생이 교사에게 개인적으로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것도 법 위반이라는 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지난해 11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교사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했을 때는 응답자의 76.7%가 “스승의 날 카네이션 한 송이까지 금지한 것은 과도하다”고 답했다.
서울 도봉구의 한 중학교는 꽃 대신 땀을 나눈다. 교사팀과 학생팀으로 나눠 농구와 축구, 피구 등 사제 대항 체육대회를 연다. 이 학교 교사 이모(26)씨는 “형식적으로 선물을 주고받기보다 직접 학생과 함께 뛰고 땀 흘리면 서로 친밀해지고 스승의 날 의미도 되새길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세종시의 한 고교에선 학생들이 재능을 발휘해 스승을 위한 행사를 준비했다. 뮤지컬학과 학생들은 고마움을 노래로 표하고, 연극영화과는 공연을 한다. 애니메이션학과는 만화와 감사 문구가 가득 담긴 보드판을 만들어 선물한다.
체육관에 모여 치르는 행사가 아니라 조회나 종례 시간에 교실에서 여는 미니 이벤트다. 이 학교 교장은 "스승의 날 풍경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며 "학교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교사들도 '올해 스승의 날은 이렇게 하자'고 권하기 민망해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짜내 스스로 이벤트를 준비하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서울 도봉구의 한 특성화고 학생회는 영상편지를 준비했다. 학생과 교사가 서로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학생들이 동영상으로 찍어 학교 방송에서 공개하기로 했다. 이 학교 교사 한모(32)씨는 "영상편지를 통해 평소 하고 싶은 말을 전하면서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당장은 매정해 보일 수 있겠지만 촌지 논란으로 얼룩졌던 스승의 날 풍경을 긍정적으로 바꿔놨다는 의견도 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김영란법이 기계적으로 사제지간을 통제한다는 비판은 나올 수 있다"면서도 "교사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카네이션이나 선물이 아닌 다른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법의 원칙주의가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송재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도 "카네이션 한 송이도 부담스러운 학생과 학부모가 부담을 덜었고, 학교들이 다양한 행사를 마련하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가현 이도경 이상헌 기자 hyun@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김영란법 첫 스승의 날… 선물 대신 영상편지, 등산, 라이딩
입력 2017-05-15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