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정부때 추진한 ‘공수처 만들기’… 文정부서 탄력

입력 2017-05-15 05:00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초부터 권력기관 개혁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면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도입 논의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의 부패 행위를 조사한다는 이 기구는 2004년 참여정부 당시에도 설립이 추진됐지만 결국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4개 야당이 모두 공수처 신설을 약속했다. 공수처 신설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

14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는 공수처의 신설을 위한 법안이 총 3개 발의돼 있다. 모두 고위공직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한 독립적 수사권을 공수처에 부여했다. 경찰과 검찰, 특별검사의 수사만으로는 국민적 의혹과 권력형 비리를 없애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지난해 8월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대표발의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공동 법안이 특히 주목된다. 국정농단 사태가 표면화하기 전 발의된 이 법안은 ‘검찰로부터 독립된 수사기구’ 설립을 골자로 한다. 역사상 최초로 검사장이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된 사례, 전직 검사장이 불법적 변론으로 거액을 벌어 세금을 포탈한 사례가 법률안 문두에 적시됐다. “대다수 국민과 시민사회는 검찰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수사기구의 신설 필요성에 더욱 동감하고 있다”고 취지를 밝혔다.

이 법안대로 공수처가 마련된다면 규모는 ‘특별검사 20명 이내 및 보조인력’이 된다. 공수처장은 국회 추천위가 단수 추천하고 국회 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식이다. 공수처에서는 현직 대통령의 가족은 물론 전직 대통령, 국회의원, 대법관, 헌법재판관, 검찰총장 등의 비리를 수사한다. 수뢰, 직권남용, 직무 관련 횡령·배임, 알선수재,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등의 부패범죄를 모두 수사한다.

문 대통령을 포함한 대부분 대선 주자들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만큼 공수처 설립 취지에는 이견이 적다. 다만 공수처가 옥상옥을 탈피해 고위공직자의 국민적 신뢰와 투명성 제고라는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각론을 잘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국회 재적의원 10분의 1 이상의 연서로 수사요청이 있는 때 즉시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은 공수처가 ‘국회의 검찰’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공동발의된 법안에 수사권은 물론 기소권과 공소유지권도 공수처에 부여한 조항도 더 논의가 필요하다. 인도네시아 부패근절위원회, 홍콩 염정공서, 대만 염정서, 싱가포르 탐오조사국 등 비슷한 해외 부패수사기구의 경우 수사권은 있으나 기소권은 없다. 부패수사를 전담하더라도 결국 각국의 법무부 소속 검사나 파견검사, 검찰관이 재판에 넘기는 식이다.

국가적 권력구조를 재편하는 일인 만큼 공수처에 과도한 권한을 부여하면 논란이 예상된다. 2004년 발의된 공수처 법안에도 기소권은 명시되지 않았다. 대신 ‘검사 지시에 응할 의무’를 명시했다. 하지만 이번 법안은 공수처가 대상 범죄에 대한 전속수사권을 갖도록 해 권한이 훨씬 강해졌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공수처가 검찰 개혁은 물론 공직 비리 근절까지 만병통치약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볼 대목이 많다”고 말했다.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비대해진 검찰권을 국민에게 돌려줄 방안을 고민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공수처가 새로운 권력기관이 돼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