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피플] 어르신들 ‘하나님의 지팡이’ 잡고 걷기를

입력 2017-05-15 00:00
명품 지팡이 ‘청려장’을 만들어 어르신들에게 선물하고 있는 최병남 목사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완성된 청려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단단하고 가벼운 지팡이 청려장의 재료는 1년생 풀인 명아주다.
청려장의 작업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재료를 세워놓은 모습. 오른쪽 끝이 칠하기 전의 명아주이고 왼쪽 끝이 완성된 청려장이다.
‘청려장(靑藜杖) 전문가’ 최병남(78세·논산 광석중앙감리교회) 원로목사를 만난 곳은 충남 논산 광석면 광석로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였다. 환한 웃음을 지으며 “어서 와유”라고 인사하는 최 목사에게서 넉넉한 마음씨가 느껴졌다.

최 목사는 1998년부터 4만9600여개의 청려장을 만들어 지팡이가 필요한 어르신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지만 사비를 들여 해온 일이었다. 성경적 사회적으로 어르신 공경이 중요하다는 소신을 갖고 젊을 때부터 늘 강조해온 게 동력이 됐다.

청려장은 어르신들 사이에선 ‘명품 지팡이’로 통한다. 사료에는 통일신라 때부터 왕이 장수한 노인들에게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전통은 지금도 이어져 매년 어버이날 대통령이 100세가 된 어르신들에게 청려장을 선물하고 있다. ‘대통령의 지팡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가벼우면서도 단단하기 때문에 청려장은 실용성면에서도 으뜸이다. 허리가 굽은 어르신들의 보행을 돕는 최고의 도우미인 셈이다.

명품 지팡이와 목회자의 만남에는 사연이 있다. 천성이 부지런하고 손재주가 좋았던 최 목사는 41년 동안 광석중앙감리교회에서 목회하면서도 늘 일거리를 찾아다녔다. 그가 청려장을 만들기 시작한 건 어르신들에 대한 안쓰러움 때문이었다.

“동네 어르신들이 다 지팡이를 사용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우산이나 부러진 나뭇가지를 대충 손질해 지팡이 대용으로 쓰셨어요. 그게 그렇게 안쓰럽더라고요.”

시작하면 반드시 끝을 보고 마는 최 목사는 청려장 제작법을 연구하기 위해 팔을 걷어 붙였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시제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청려장의 역사를 설명하던 최 목사가 대뜸 “이 지팡이 뭘로 만드는지 알아유”라고 물었다. 기자가 머뭇거리자 작업실 구석에 아무렇게나 쌓여있던 풀을 가리켰다. 들판에서 한번은 봤음직한, 갈대보다 약간 두껍지만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풀 ‘명아주’였다.

한겨울에는 손끝만 스쳐도 바스러질 정도로 약한 명아주가 청려장으로 ‘둔갑’하는 공정은 매우 복잡했다.

명아주를 구하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량으로 명아주를 구하기 위해서는 전국의 들판을 샅샅이 뒤지는 수밖에 없다. 10월초 명아주를 구하고 나면 흙을 털고 잔뿌리를 태운 뒤 톱으로 다듬는 게 첫 번째 작업이다. 이후에는 끓는 물에 삶은 뒤 말려야 한다. 여기까지 마치면 보통 12월이 된다. 잘 마른 명아주에 색을 입히는 건 이듬해 봄부터 하는데 이 작업이 공정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옻칠을 하는 게 정석이지만 가격이 비싸 합성도료인 ‘카슈’로 칠을 한다. 칠은 아홉 차례 반복한다. 역한 냄새를 풍기는 카슈를 칠해서 말린 뒤 사포로 손질하고 다시 칠하는 일을 반복해야 드디어 제대로 된 청려장이 만들어진다.

명아주를 구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작업이 최 목사의 몫이다. 이 때문에 2010년 망막박리로 실명위기에 놓였다. 카슈의 독성이 문제였다. 가족들이 청려장 만드는 걸 반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최 목사의 목표는 5만개를 채우는 것이다. 이제 400개만 더 만들면 된다.

지금은 생산량이 예전 같지 않아 노인정이나 교회 등으로 대량 발송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본래 취지대로 청려장이 필요한 어르신들에게는 정성스럽게 포장해 선물하고 있다.

인터뷰가 끝날 때쯤 최 목사의 시선이 장대비가 내리는 창밖으로 향했다. 그는 흐뭇한 표정으로 “비가 그치면 명아주가 한 뼘은 더 자랄 텐데”라며 미소를 지었다.

논산=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