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를 바라보는 일본의 시선이 곱지 않다. 보수 언론은 벌써 ‘친북·반일’이란 딱지를 붙인다. 대북 햇볕정책을 계승해 한·미·일의 대북 포위망에 구멍을 낼 것을 우려한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비판적이고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재협상해야 한다는 것도 걱정거리다. 진보 언론도 남북대화에 의한 긴장 완화는 기대하면서도 한·미·일의 대북 결속을 염려한다. 정부, 언론이 한목소리로 위안부 합의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 북한 문제와 위안부 문제를 묶어서 보는지 의아할 것이다. 경위는 이렇다. 2012년 말 이래 아베 신조 정권의 역사수정주의적 행보가 동아시아를 뜨겁게 달군 일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위안부 연행의 강제성을 부정하고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했다. 한·중 양국은 함께 압박했고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권도 적지 않은 압력을 가했다. 전술적 후퇴 차원에서 마지못해 한·미·일 안보 협력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전후 70주년 아베 담화와 한·일 위안부 합의는 그 산물이었다.
새 정부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 실현과 역사정의라는 차원에서 유엔 고문방지위원회가 권고한 것처럼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명예 회복, 재발 방지를 위해 재협상 내지는 수정·개선을 추진하는 것은 찬성한다. 대통령 자신이 노동인권 변호사 출신이고 위안부 할머니나 세월호 피해자의 참담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공감한다. 정치적 타협은 상정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독도, 역사 교과서 문제로 일본과 크게 각을 세운 노무현정권의 경험도 숙지하고 있기에 급진적이 아닌 점진적, 포퓰리즘이 아닌 문제 해결 지향적인 접근을 하리라 본다.
다만 한·일 관계의 전략적 측면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사 문제를 뒷전에 미뤄두고 안보 협력을 중시하자는 말이 아니다. 일본 측이 한·일 안보 협력이나 한·미·일 공조를 강조하는 까닭은 북한과 중국을 ‘억지’해야 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엄밀히는 대중 억지가 핵심이다. 억지 전략을 수행하기 위해 아베 정권은 많은 공을 들여 왔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으로 미·일동맹을 강화함으로써 중국의 무역 행사를 비롯한 다방면에 걸친 현상변경 시도를 저지하고자 했다.
동중국해, 남중국해, 그리고 인도양에서도 재균형 전략을 내건 오바마 정권과 이인삼각(二人三脚)으로 대중 포위망을 구축하고자 했다. 군사적으로 가장 취약한 부분이 대중 미션을 수행하지 않은 한국과 미군기지에서 가장 떨어진 남중국해였다. 한국과는 위안부 합의 후 안보 협력이 재개됐다. 필리핀 등 영유권 문제 당사국들에 대한 경제적, 군사적 지원도 열심이다. 미국-일본-대만-필리핀을 종축으로 하고 인도-싱가포르-인도네시아-호주를 횡축으로 하는 T자형 인도·태평양 동맹론도 거론한다. 하지만 지금 대중 포위망은 파탄 직전이다. 도널드 트럼프 정권 등장으로 재균형 전략의 경제적 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동력을 잃었다. 트럼프-시진핑 관계는 일본이 도모해 온 ‘미·일 대(對) 중’ 구도를 무너뜨리고 있다. 동맹 이론상 억지의 정책 효과가 별로 없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포위망에 구멍이 생기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필연적이다. 마찬가지로 압박 일변도로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한·미·일의 그간의 시도도 성공하지 못했다.
억지 전략에 변화를 줘야 한다. 사생결단으로 포위망을 돌파하려는 상대에게 억지 논리는 잘 먹히지 않는다. 한·미·일 안보 협력은 과거 미·일동맹이 중국에 그랬던 것처럼 질서 안정화를 꾀하면서 북한의 국제사회 편입을 장려하는 유연한 정치제도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일본의 동북아에서의 건설적 관여를 보장하는 길이기도 하다.
서승원 고려대 교수·글로벌일본연구원장
[한반도포커스-서승원] 전략적 對日외교의 두 가지 축
입력 2017-05-14 1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