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출범한 문재인정부가 얽히고설킨 국제통상 갈등을 풀기 위해 어떤 해법을 제시할지 산업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은 한·미 FTA 재협상을 통보하며 한국을 압박하고 있고, 중국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의 숨통을 죄고 있다.
중국은 현재 사드 배치를 둘러싼 외교적 마찰로 한국 기업들의 손실이 가장 두드러진 시장이다. 경북 성주의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가 대표적 타깃이다. 중국에 진출한 롯데마트 99개 점포 가운데 12일 현재 운영 중인 곳은 13곳에 불과하다. 74곳이 강제영업중단 조치를 받았고, 12곳은 자체 휴점 중이다. 3∼4월 롯데가 입은 손실은 5000억원가량으로 추산되고 있다. 중국 고객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내 면세점 사업도 여론 악화로 타격을 입고 있다.
LG화학과 삼성SDI 등 중국 현지에 진출한 자동차 배터리 업체들도 지난해부터 중국 정부로부터 전기차 배터리 모범규준 인증을 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1월에는 중국 당국이 달성하기 힘든 수준으로 인증 기준을 높이면서 업체들의 속앓이는 더욱 심해졌다. 각 업체들은 ESS(에너지 저장장치)와 유럽 수출용 배터리 생산 비중을 높이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중국 시장을 대체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업계는 새 정부가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 11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 나눈 통화에서 사드 문제 해결을 언급하면서 기대감이 높아진 상태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12일 “문제 해결을 위해 박병석 의원을 중국 특사로 파견하는 등 새 정부가 의지를 보인다는 점만으로도 업계는 고무된 상태”라고 말했다.
미국과의 FTA 재협상 문제도 ‘발등의 불’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12일 펴낸 ‘미국 트럼프 정부 100일의 통상정책과 시사점’ 보고서는 FTA 재협상과 한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문제, 반덤핑 관세 부과 등 현재 미국이 동원하는 방식들이 모두 자국 무역적자 해소라는 목표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강경한 보호무역주의자로 알려진 로버트 라이시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인준안이 상원을 통과함에 따라 미국의 통상 압력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는 미국의 이런 움직임에 마냥 끌려다닐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미 FTA 재협상으로 관세가 조정될 경우 2021년까지 최대 170억 달러에 달하는 수출 손실을 입을 수 있다. 특히 대미 주력 수출 산업인 자동차·기계·철강 등에서 피해가 우려된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국익을 지켜내고 이익 균형을 맞추는 노력을 하면 된다”는 다소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한·미 FTA 발효 이후 전체적으로 한국의 대미 상품수지 흑자 확대는 사실이나 한국의 대미 수입도 대세계 수입보다 빠르게 증가했으며, 대미 서비스수지 적자와 미국으로의 투자도 증가해 양국은 상호 균형적인 경제관계를 이루고 있다”며 “양국 간 객관적이고 사실에 기초한 평가에 대한 인식 공유가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연구원은 또 “한·미 FTA보다 선행될 것으로 전망되는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면밀히 검토하고 동향을 참고해 대비책을 마련하되 차분한 대응이 중요하다”며 “개선 협상을 신무역 이슈에 대한 선제적 대응과 미래지향적 통상관계를 포함해 양국 간 경제협력 확대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정현수 기자, 세종=신준섭 기자 jukebox@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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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5-13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