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일성 주석 한·중 수교 통보에 한동안 말 안해”

입력 2017-05-13 05:02

25년 전 ‘한·중 수교’의 주역인 첸치천(錢其琛) 전 국무원 부총리가 지난 9일 사망하면서 당시 수교를 앞두고 북한 김일성(사진·1994년 사망) 주석과 만난 일화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첸치천은 1988년부터 98년까지 중국 외교부장을 맡았으며, 2003년까지 국무원 외교담당 부총리를 지냈다. 외교부장이던 92년 8월 베이징에서 한·중 수교협정에 중국을 대표해 서명했다.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첸치천이 2004년 펴낸 회고록 ‘중국 외교의 열 가지 에피소드’를 인용해 당시 일화를 12일 소개했다.

첸치천은 92년 한·중 수교를 한 달 앞둔 7월 김 주석을 직접 만나 중국 수뇌부의 한·중 수교 결정 사실을 전달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는 “그건 정말 쉽지 않은 임무였다. 나는 (김 주석을 만나기 전에) 걱정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첸치천은 이후 평양으로 가 김 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남한과 수교를 맺게 된 배경과 북한과의 사회주의 연대는 변함없을 것이란 내용이었다.

얘기를 들은 김 주석은 생각에 잠겨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윽고 “장 주석의 메시지를 잘 들었고, 중국이 자체적으로 외교 정책을 결정할 수 있음을 이해한다. 북한은 중국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짧게 답했다. 김 주석은 이어 첸치천 일행이 가져온 선물을 흘끗 보더니 밖으로 나갔다.

첸치천은 “내가 기억하기에 그날은 중국 대표단이 김 주석을 만난 모든 회동 중에 가장 짧았다. 김 주석은 과거에 늘 열었던 연회도 우리에게는 베풀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북한이 한·중 수교를 배신으로 여기면서 북·중 관계가 크게 달라지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노석철 기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