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민정수석 임명된 날… ‘용퇴’ 밝힌 檢 수장

입력 2017-05-12 05:02
김수남 검찰총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임기를 7개월 남겨놓은 김 총장은 오후 입장자료를 내고 사의를 표명했다. 뉴시스

김수남 검찰총장은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한 직후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내 역할은 끝났다고 생각한다. 지금이 물러날 적기”라고 말했다. 새 정부 출범 하루 만이자, 검찰개혁을 강조해 온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임명 당일 용퇴했다. 조 수석의 등장과 김 총장의 퇴진은 향후 전개될 검찰개혁의 상징적 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 총장은 자신에게 임명장을 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할 때 이미 사직을 결심했었다는 입장이다.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총장이 검찰개혁 대응의 선두에 서는 건 오히려 조직에 부담이 된다는 판단도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김 총장은 오후 2시 김후곤 대검 대변인을 통해 사의를 밝혔다. 그는 “박 전 대통령 수사도 마무리됐고 대선도 무사히 종료돼 새 대통령이 취임했다. 저의 소임을 어느 정도 마쳤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임명권자에 대한 수사여서 인간적 고뇌가 컸다”며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이 집행됐을 때 총장직을 그만둘 생각도 했으나 대선 관련 막중한 책무가 부여돼 있고,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모두 공석인 상황에서 총장직을 사퇴하는 건 무책임한 처신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대검 관계자는 “김 총장이 평소 검찰총장은 사표를 가슴에 품고 일하는 자리라고 말해 왔다”고 전했다. 이어 “새 정부의 (사퇴) 요청이나 압력은 전혀 없었다. 오로지 김 총장 개인이 내린 결단”이라고 말했다.

임기를 7개월 남겨둔 김 총장의 갑작스러운 사의 표명은 새 정부 출범과 개혁 바람에 직면한 검찰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많다. 문재인 대통령이 적폐청산의 우선 과제로 검찰개혁을 공언한 터에 탄핵된 정권의 검찰 수장이 계속 자리를 지키는 건 새 정부나 검찰 조직 모두에 짐이 된다고 봤을 수 있다. 그는 12월까지인 임기를 채워야 한다는 대검 참모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사의를 밝힌 뒤 휴가에 들어갔다.

조 수석 임명 날 사표를 낸 것을 두고 현재의 검찰개혁 흐름에 대한 항의 표시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지만, 김 총장은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검찰개혁 문제는 새 대통령의 공약인 데다 국민의 뜻이 반영된 사안이라 존중돼야 한다”며 “검찰도 반성할 부분은 반성하고, 고칠 부분은 고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를 마무리 짓지 못한 채 후배들에게 부담을 남겨 미안하다”고도 했다.

김 총장은 다만 “공약들이 과연 국민과 사법 시스템을 위해 제일 좋은 방안인지는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신중히 점검해 봐야 한다”며 지금의 개혁안에 이견을 내비쳤다.

급작스러운 상황 전개에 검찰 내부는 어수선했다. 대검의 한 간부는 “조 수석 발탁은 검찰을 손보겠다는 선언 아니냐”며 “어느 때보다 험난한 파고를 지나게 될 거 같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평검사는 “검찰업무 실무경험이 없는 조 수석이 민정수석 역할을 잘할 수 있을지, 현실에 맞는 개혁을 추진할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검사는 “이명박·박근혜정부 10년간 검사 출신 민정수석들의 간섭에 검찰이 시달려 오지 않았나”며 “이번 정부가 검찰 인사와 수사 독립성을 보장해 준다면 상황이 이전보다 훨씬 좋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부장검사는 “개혁이 민정수석 한 명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다. 국회와 법무부 장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호일 노용택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