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脫권위’ 실험… 한국판 ‘웨스트윙 시대’ 여나

입력 2017-05-11 18:34 수정 2017-05-11 22:19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임종석 비서실장, 조국 신임 민정수석 등 참모들과 함께 커피를 들고 청와대 경내를 걷고 있다. 상의를 벗고 와이셔츠 차림의 문 대통령과 참모들은 앞서 점심을 함께했으며, 경내를 산책하며 이후 국정운영 방안을 격의 없이 논의했다. 왼쪽부터 조 수석, 권혁기 춘추관장, 문 대통령, 이정도 총무비서관, 조현옥 인사수석, 임 실장, 송인배 전 선대위 일정총괄팀장,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이병주 기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2009년 백악관 웨스트윙의 의회담당보좌관실에서 참모들과 회의하는 모습. 대통령과 참모들 모습이 자유로워 보인다. 백악관박물관 홈페이지
문재인 대통령의 탈권위 실험이 시작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 시도다. 전범(典範)은 스웨덴이 사랑했던 올로프 팔메 전 총리와 대통령과 참모들의 격의 없는 토론이 오가는 상징적 장소인 미국의 ‘웨스트윙(백악관 서관)’이다.

문 대통령은 10일 취임사에서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다”고 선언했다. 문 대통령의 요구에 경호 문턱도 대폭 낮아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11일 청와대에 출근하며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서울 홍은동 자택을 나설 때는 경호 차량에서 내려 인근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셀카를 찍었다. 경호원들의 제지는 없었다.

청와대는 현재 청와대 비서동(위민관)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을 확대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부통령실·비서실장실·대변인실·국토안보보좌관실 등이 붙어 있는 미국 웨스트윙처럼 집무 공간을 꾸며 참모들과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겠다는 의도다. 51세인 임종석 비서실장과는 수시로 얼굴을 맞대고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공언대로 청와대가 광화문으로 이전하면 대통령의 집무실과 비서동이 한 건물에 있는 본격적인 한국판 웨스트윙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임명된 조국 민정수석, 조현옥 인사수석, 윤영찬 홍보수석, 이정도 총무비서관과 오찬을 함께한 뒤 상의를 벗어든 채 청와대 경내를 산책했다. 대면보고 여부 자체가 이슈가 됐던 전임 청와대와는 달라진 분위기다. 청와대 참모들은 문 대통령의 스타일을 12년간 스웨덴 총리를 지냈던 팔메 전 총리에 비유하고 있다. 팔메 전 총리는 12년간 스웨덴 총리를 지냈지만, 경호원 없이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했던 정치인이다. 그는 1986년 2월 경호원도 퇴근시킨 채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고 나오다 괴한의 총에 맞아 숨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재임 시절 “우리나라는 팔메 총리처럼 자유롭게, 시민과 같은 높이에서 걸어 다니는 지도자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청와대 개조가 처음은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청와대 본관에 비서진이 대거 상주할 수 있도록 오피스텔 형으로 개조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청와대 본관의 문화재적 가치 훼손에 대한 우려에다 행정수도 이전까지 추진되면서 자연스럽게 포기했다. 노무현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 본관도 비서들을 불러 회의하기에 나쁘지 않은 구조였다. 수시로 비서들이 들어와서 대통령이 혼자라는 느낌을 갖지 않았다”며 “다만 비서동 근처에 집무실을 따로 만들어 물리적 거리도 가깝게 했다”고 말했다. 1999년부터 2006년까지 방송됐던 미국 드라마 ‘웨스트윙’도 노무현·문재인 참모들의 인기 드라마였다. 경제학자 출신 제드 바틀릿 대통령과 그의 참모진이 대통령 공식 집무실인 웨스트윙에서 자유롭게 일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명박 청와대도 웨스트윙 시리즈를 구입해 화제가 됐다.

문 대통령의 탈권위 행보는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지만 한 곳엔 비상이 걸렸다. 대통령의 신변안전을 책임질 대통령 경호실이다. 문 대통령은 주영훈 경호실장에게 ‘가끔 시장에 들러 시민들과 막걸리 한잔 할 수 있을 정도의 경호체계를 갖춰 달라’는 취지의 주문을 했다고 한다. 청와대 경호실은 현재 경호체계 전반을 손보고 있다. 오후 8시부터 이튿날 오전 5시까지 통제되는 ‘청와대 앞길’을 완전히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글=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