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 Word-채플[chapel] 대학교 등 부속 예배당에서의 예배
이 학교 학생들의 싸움이 없었다면 올해 봄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화여대생들의 학내문제 제기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마각(馬脚)이 처음 드러났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문재인 신임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1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를 찾았다. “이화인으로서 사회 변화에 보탬이 된 것 같아 자랑스러워요” “학교도 나라도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녹음이 짙어가는 교정에서 학생들의 당찬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학생들은 채플을 통해 선교사들의 설립정신을 이해하고 사랑과 공의라는 기독교적 가치를 받아들입니다.” 이 대학 교목인 장윤재(기독교학과) 교수는 “채플이 이대생을 이화인으로 만든다”고 얘기했다. 이 말을 확인하기 위해 대강당에서 진행되는 채플에 참석했다.
천국 문은 지각이 허용되지만…
대강당은 지난해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학내 특혜 등을 놓고 학생들이 시위했던 곳이기도 하다. 채플은 11시30분 정시에 시작됐다. “천국 문은 늦게 가도 열리지만 채플 문은 늦게 오면 열리지 않는다”는 이 학교 격언대로였다.
2000석 넘는 좌석이 거의 찬 듯했다. 안선희 교목이 기도했다. “하나님, 혼란의 시기를 지나 이 아침 변화의 기대와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가장 짧은 기도는 ‘엄마’라는 어느 시인의 이야기를 기억해봅니다….” 기도 후 어버이를 공경하라(마 19:19)는 성구를 읽었다. 곧 전문배우가 소품이 놓인 무대에 섰다. 가정의 달을 맞아 교목실이 준비한 드라마채플 ‘엄마와 딸’이었다. 스무 살 생일을 맞은 딸과 모바일메신저로 대화하던 엄마가 “너도 결혼해서 너 같은 딸 낳아보라”고 했던 자신의 어머니를 회상했다.
엄마와 딸의 일상적 갈등을 연극 무용 노래로 아름답게 풀어냈다. 공연 후엔 재학생과 그 어머니가 서로에게 주는 영상메시지 10여개가 공개됐다. 여기저기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김그린(22)씨는 “너무 감동적이다. 엄마 역시 사랑과 이해가 필요한 사람이란 걸 새롭게 느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대 재학생은 채플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131년째 이어진 전통이다. 지금 학생들은 4년 8학기 동안 채플을 수강한다. 교목실은 연극 무용 음악 등을 통해 기독교적 메시지를 전하는 데 힘쓰고 있다. 일부 재학생은 채플에 거부감을 갖기도 하지만 채플은 졸업생 설문조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으로 꼽힌다.
본래 채플은 병원 군대 학교 등 해당 기관 부속 예배당이나 이곳의 예배를 가리킨다. 기독교 문화권인 서양에서는 채플이 전통적인 예배에 가깝다. 참석자 대부분이 크리스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양에선 비(非)기독교인을 위한 선교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예배 형식뿐 아니라 공연 강연 등 다른 형식도 자주 사용한다. 한국 대학의 채플도 후자 성격이 강하다. 선교사들이 선교 목적으로 교육기관을 설립, 오늘까지 이어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설교에 “뭘 굽는 거예요?”
숭실대 채플은 강연에 가까웠다. 조은식 교목은 지난 1일 서울 동작구 숭실대 한경직기념관에서 ‘인내하는 자는 복되다’(약 5:11)는 성구를 바탕으로 채플을 진행하고 있었다. 조 교목은 학생들에게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흔들어 보라. 두 다리도 번갈아 들어보라”고 했다. 처음엔 졸고 있는 학생을 깨우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두 팔과 두 다리가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어 사지가 없는 닉 부이치치의 삶을 책과 동영상으로 소개했다. 닉은 “하나님은 나를 포기한 적이 없다. 스스로 기적이 되자”고 다짐하고 각고의 노력 끝에 전 세계인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됐다고 했다.
현재에 감사하고 어려움을 인내하자는 내용이었다. 내내 집중하던 김기홍(24)씨에게 채플을 평소 어떻게 듣는지 물었다. 김씨는 “채플에서 예상치 못한 위로나 기쁨을 얻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숭실대 교목실 역시 국악앙상블, 바이올리니스트 초청 등 예술을 통해 학생들의 영적 감수성을 일깨운다. 숭실대는 6학기 동안 수강해야 한다.
연세대 교목실은 2일 이웃 학교인 이대의 양명수 교목실장을 초청했다. 양 실장은 ‘주인이 되자’(갈 5:1)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가장 일반적인 채플형식이다. 그는 그간의 시국을 의식한 듯 “지도층의 부패는 국민 각자의 약한 주인의식과 관련이 있다”며 “국민의 주인의식 수준이 높아질 때 이 나라 민주주의도 발전한다”고 했다.
연세대는 채플이 4학기가 의무다. 연세대는 이번 학기 이런 말씀채플을 비롯해 한비야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 가수 윤형주 장로 등을 초청해 강연채플을 진행한다. 사실 설교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도 많다.
문화공연과 명사초청 선교적 성격 반영
한 교목은 “출애굽기 설교를 했는데 한 학생이 와서 ‘도대체 뭘 굽는다는 거예요?’라고 묻더라”고 전하며 웃었다.
각 대학 교목실이 이렇게 애쓰고 있지만 학생들 호응이 좋지만은 않다. 일반 사회와 마찬가지로 비기독교인 학생 비율이 70% 이상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캠퍼스에서 만난 K(22)씨는 “재미도 없고 지루하다. 종교가 없는 나도 수용할 수 있는 내용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했다. P(21)씨는 “선택과목이 되면 좋겠다. 종교를 강요당하는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교목들은 반기독교 정서가 나날이 강해지는 캠퍼스에서 ‘말씀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한국기독교대학 교목회에 따르면 전국 48개 대학에 교목 157명이 활동 중이다. 미등록 교목까지 합치면 50개 대학, 200여명. 대학당 4명꼴이다. 수도권 대학 A교목은 “‘당신이 날 한번 설득해봐. 내가 넘어가나’라는 표정으로 노려보거나 스마트폰에 얼굴을 박고 있거나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자는 학생이 적지 않다”고 했다. 10년 넘게 활동해온 B교목은 “학생들 앞에 설 때마다 아마존 밀림으로 떠나는 선교사의 심정”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목실은 ‘뿌리는 것은 사람이고 거두는 분은 하나님’(고전 3:6)이라는 마음으로 채플을 준비한다. 한인철 연세대 교목실장은 “예수의 정신을 가진 투철한 학생이 입학생 중에 매년 10명만 나와도 성공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 학생이 사회에 나가 해당 분야를 바꾸고 이 나라를 바꿀 수 있다”고 했다. 말씀의 힘을 믿으며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글=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김보연 인턴기자
[채플] “말씀 씨앗 뿌리니 하나님이 거두실 것”
입력 2017-05-13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