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초년병 시절, 선배들로부터 전설처럼 내려오는 관악산 고양이 기사 에피소드를 들은 적이 있다. 기사는 관악산 등산로에 몸길이만 1m가 넘는 새끼 호랑이만한 고양이가 출현해 등산객들이 기겁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고양이가 처음부터 새끼 호랑이만 하지는 않았다. 몸길이가 50㎝ 정도 되는 것 같다는 최초 보고는 데스크를 거치면서 1m로 늘었고, 최종적으로 5m 폭의 개울과 2m 높이의 철제 담장을 뛰어넘어 서울대 교정까지 출몰하는 새끼 호랑이 같은 고양이로 변신했다.
SBS의 ‘세월호 가짜뉴스’논란이 20년 가까이 된 이 우스개를 떠올리게 했다. SBS는 지난 2일 세월호의 뒤늦은 인양 배경에 문재인 대통령과 해양수산부 간에 거래가 있었던 것처럼 보도했다. 익명의 해수부 관계자는 “이거(세월호 인양)는 문재인 후보에게 갖다 바치는 거거든요. 해수부 2차관, 문재인 후보가 약속했거든요”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당시 문 캠프 측은 ‘가짜뉴스’라고 강력히 항의했고, SBS는 보도에 문제가 있었다고 사과했다.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이 사건 관련자들의 과한 행동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애초 이 사달이 벌어진 것은 SBS 데스크의 오버 때문이다. SBS 노동조합 진상조사에 따르면 이 기사는 데스킹 과정에서 크게 왜곡됐다. 기사 초고에 담겼던 박근혜 정부 시절 인양 지연 내용은 삭제됐고, 제목도 ‘인양 고의 지연 의혹…다음달 본격조사’에서 ‘차기 정권과 거래? 인양 지연 의혹 조사’로 바뀌었다.
기사가 나간 직후 해수부 움직임은 오버란 바로 이런 것임을 보여줬다. 김영석 장관이 직접 나서 언론 해명 브리핑을 하는 초유의 일을 벌이더니 문제의 발언 관계자가 3년차 7급 공무원이라고 취재원 신분까지 공개했다. 이 직원의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지만 공무원 징계규정 어디에도 언론 인터뷰를 이유로 공개적인 ‘인민재판’을 받도록 하는 내용은 없다. 해수부의 행태는 이 부처가 정말 차기 정권과 거래해서 몸집을 키우고 싶다는 열망을 보여줬다.
가짜뉴스의 피해자겠지만 당시 문 캠프도 흥분한 측면이 없지 않다. 문 캠프는 해수부에 해당 공무원을 색출하라고 요구했고 방송사를 검찰에 고발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유감을 표명하고 차분히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심의를 기다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보통의 상식을 가진 유권자라면 이 정도 가짜뉴스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이 보도 당시는 물론 선거운동 기간 내내 여론조사 1위를 놓치지 않았던 예비 권력이었다. 권력이 흥분을 하니 주변 권력이 덩달아 오버한 셈이다. 우리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에서 권력 자체보다 더 무서운 것이 권력을 등에 업은 주변 권력임을 배웠다.
이번 선거에서 문 대통령 뽑기를 주저했던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문재인은 좋은데 그 측근들이 싫다는 이유를 들었다. 5·18 전야제 밤에 광주에서 술판을 벌인 이, 인사청탁 거절하는 차관에게 “배 째 드릴까요” 했던 이, 사무실에 카드 단말기를 가져다놓고 자신의 시집을 강매했던 이. 모두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다. 혹자는 이들에게 휘둘릴 경우 문 대통령이 ‘착한 박근혜’가 될 수 있다고 염려하기도 한다. 물론 과거 한번의 실수로 최순실과 비교된다는 게 이들에게는 모욕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문 대통령 5년 임기 내내 주변 권력들은 자신을 낮추고 언행에 조심해야 할 것이다. 오버하는 주변 권력 때문에 허망하게 무너지는 권력을 국민들은 지켜봤다.
이성규 경제부 차장 zhibago@kmib.co.kr
[세상만사-이성규] 권력, 오버하지 말아야
입력 2017-05-11 19:10 수정 2017-05-11 2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