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반정부 시위가 연일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9일(현지시간) 수도 카라카스의 호세마르티 광장에 20대 초반 남성이 바이올린을 들고 나타났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두 달 넘게 이어진 시위로 지금까지 38명의 사망자가 나온 격렬한 충돌 현장에서 이 남성은 담담하게 걸으며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이 장면은 10일 미국 CNN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지며 많은 이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최루탄과 화염병이 날아다니는 격돌의 현장에서 이렇다 할 보호 장비 하나 없이 등장한 거리의 바이올리니스트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태연하게 자신의 연주에 열중해 더욱 이목을 끌었다.
방송에 등장한 영상은 현지 비디오 저널리스트 이반 에르네스토 레이에즈가 현장에서 촬영한 것으로, 레이에즈는 CNN에 “잔잔한 선율을 듣고 처음엔 스피커에서 나온 것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음악이 나오는 쪽으로 돌아보니 그 친구가 있었다”면서 “쉬지 않고 연주를 계속해 이름을 물어볼 틈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 연주에 대해 10대 바이올리니스트 아르만도 카니자레스에 대한 동료 음악가의 추모였을 것이란 추측이 나오고 있다. 남미 저소득층 청소년 음악교육 프로그램인 ‘엘시스테마’에서 활동하던 연주자 카니자레스는 지난주 시위에 나섰다 총에 맞아 숨졌다. 격렬했던 지난주 시위에서 시위대의 맨 앞을 지킨 카니자레스는 위급한 상황이니 피하자고 설득하는 친구들을 뿌리치고 “조국을 위해 싸우겠다”며 현장에 남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베네수엘라 대법원은 지난 3월 29일 국회를 해산하고 국회 입법 권한을 대법원으로 귀속시키려다 국민의 저항에 부닥쳐 철회한 바 있다. 국민들은 이후 집권 세력의 국가권력 독점 시도에 분노해 지금까지 계속 시위를 벌이고 있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
베네수엘라 시위현장서 울려퍼진 바이올린 선율
입력 2017-05-11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