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19만 vs 경기 1858만원… 화재 피해액 천차만별 왜?

입력 2017-05-11 05:02

서울시내 소방서 화재조사관 A씨는 화재 피해액을 축소 산정한 적이 있다고 10일 고백했다. “생각한 재산 피해액이 10억원쯤 돼도 2억5000만원 아래로 줄일 때가 많다”는 말도 덧붙였다. 산정된 액수가 2억5000만원을 넘으면 열흘 내에 화재방어 검토회의를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화재 원인, 피해 현황, 유관기관의 대응 방식 등을 모두 파악해 자료를 작성하기에 10일은 너무 짧다는 게 A씨 설명이다.

화재방어 검토회의는 대형화재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처방안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피해액이 50억원을 넘었을 때나 지하철처럼 사회적 물의를 빚는 화재가 나 5억원 이상의 피해를 낸 경우 회의가 개최된다. 서울시는 더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적용, 재산 피해액이 2억5000만원을 넘을 경우 소방서에서 자체 검토회의를 열도록 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은 훨씬 엄격하지만 서울시내 소방서의 인력 사정은 타 지역과 별 차이가 없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 대부분 소방서에는 화재조사관이 2명씩 팀을 이뤄 3교대로 근무한다. 검토회의 준비 기간도 10일로 동일하다.

A씨처럼 과도한 업무 부담을 피하기 위해 화재 피해 규모를 검토회의 개최 기준인 2억5000만원 아래로 축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화재발생 건당 재산 피해액은 서울이 219만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적었다. 인근 경기도는 건당 평균 1858만원이고, 전국 평균은 968만원이다. 서울의 피해 규모는 경기도의 9분의 1가량, 전국 평균과 비교해도 5분의 1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소방 당국의 추산 피해액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관련 정책을 세울 때 기초 자료로 쓰인다.

김유식 한국국제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지방에는 물류센터나 공장이 많아 서울 바깥 지역의 화재 피해액이 더 크게 잡힐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의 화재 피해 규모가 전국 최소인 것은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전국 단위로 화재 피해를 집계해도 지난해 기준 근린생활시설과 공동주택에서 발생하는 화재가 제일 많고 공장·창고는 3번째”라며 “서울 주민이 대체로 다른 시도에 비해 부유한 편이라 재산 피해도 많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수적인 화재 피해액 산정이 소방서의 고질적인 관행이라는 지적도 있다. 초동보고를 빨리 올리려다 보니 피해를 정확히 살필 시간이 부족하고, 피해액이 클수록 업무 부담이 늘다보니 가급적 적게 잡으려는 관성이 일부 남아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시내 소방서 5곳에 문의한 결과 2곳에서 “과거에는 피해액을 높게 잡으면 질책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피해 규모를 산정할 조사 시간을 늘리고, 인력난을 해소해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주현돈 한국국제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한국에선 10일 내에 검토회의를 하라고 규정해 놓았지만 미국 등 선진국은 1년씩 조사한다”고 비판했다. 임채현 제주국제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현재 화재 조사는 보상이나 가해자 징계에만 집중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는 “한국은 미국 일본 유럽 등에 비해 1인당 소방인력이 적다”며 “문재인정부가 소방관 확충과 처우 개선을 약속했듯이 화재 조사 전문성을 강화시키려면 관련 인력과 예산을 더 투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임주언 이재연 이형민 기자 eon@kmib.co.kr, 일러스트=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