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소극장에서 공연되던 공개 코미디가 18년 전 TV로 옮겨왔다. 반향은 엄청났다. 코미디언들이 꾸민 3분짜리 콩트에 관객은 자지러졌다. 판에 박힌 리액션이 아닌 살아있는 웃음이 터져 나온 것이다. KBS 2TV ‘개그콘서트’(이하 ‘개콘’)는 그렇게 공개 코미디 붐을 몰고 왔다.
1999년 첫 방송된 ‘개콘’은 그간 숱한 히트 코너를 배출해냈다. 심현섭이 이끈 ‘사바나의 아침’을 시작으로 ‘박성호의 뮤직토크’ ‘갈갈이 삼형제’ ‘수다맨’ ‘봉숭아 학당’ ‘도레미 트리오’ ‘대화가 필요해’ ‘달인’ 등에 이르기까지 프로그램의 인기는 좀처럼 식을 줄 몰랐다.
몇 해 전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리얼 버라이어티와 관찰예능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공개 코미디는 힘을 잃었다. ‘개콘’ ‘웃찾사’(SBS) ‘코미디 빅리그’(tvN) 등이 명맥을 잇고 있는 상황. 맏형격인 ‘개콘’의 어깨는 어느 때보다 무겁다. 900회를 맞은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개콘’은 오는 14일부터 3주에 걸쳐 900회 특집을 내보낸다. 김준호 김대희 유세윤 강유미 김병만 이수근 등 레전드들이 깜짝 출연한다. 화려한 게스트도 함께한다. 유재석과 배우 남궁민, 걸그룹 트와이스 등이 무대에 오른다. 이처럼 거창한 특집을 준비한 이유는 “큰 전환점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이정규 PD는 말했다.
이 PD는 10일 서울 영등포구 KBS별관에서 진행된 간담회에서 “프로그램이 침체기를 겪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눈에 띄는 캐릭터가 많지 않고, 빨라진 웃음 템포를 따라가지 못한 게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901회부터는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코너의 절반 이상을 갈아치울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얼마 전 유재석씨와 회식을 함께하면서 이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심야시간대 코미디 프로그램을 대중적으로 소비되게 만든 게 ‘개콘’이라고요. 다시 한번 모험을 해볼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의 형식으로는 희망을 찾지 못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죠.”
그럼에도, ‘개콘’이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김준호는 이렇게 답했다. “엄마 아빠 아이가 모두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우리 목표입니다. 대화가 줄어든 부자 혹은 월요일을 맞은 직장인들끼리 즐겁게 소통할 꺼리가 되는 거죠. 코미디의 가치는 어마어마합니다.”
이 PD는 “월요병을 잊게 해주는 프로그램으로 굳건히 남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준호는 좀 더 구체적인 그림을 그렸다. “예전엔 정치 풍자를 할 때 괜히 눈치가 보였거든요. 당연한 걸 당연하게 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됐으면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개콘’에 나와 주시는 건 어떨까요? 코미디를 함께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대통령이 돼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굳세어라 ‘개콘’… 900회 넘어 제2의 전성기로
입력 2017-05-1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