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FBI 국장 전격 해고… “닉슨 대학살의 재연”

입력 2017-05-10 17:56 수정 2017-05-10 21:40
제임스 코미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9일(현지시간) 강연 일정을 위해 일행과 함께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비행기에 오르고 있다. 코미 국장은 그러나 LA 연방수사국 지부에서 강의하던 중 TV 긴급뉴스를 통해 자신의 해임 사실을 들었다.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임스 코미(57)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전격 해임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이메일 스캔들 수사의 부실이 표면상 해임 사유지만, 실상은 FBI의 러시아 내통 의혹 수사가 백악관을 조여오자 트럼프 대통령이 칼을 꺼내들었다는 분석이 많다. 이에 ‘러시아 스캔들의 진상 규명이 사실상 힘들어졌다’는 비판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과 로드 로젠스타인 법무부 부장관의 건의를 수용해 해임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신뢰와 자신감을 되찾기 위해 FBI의 새 리더십을 찾는 일은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즉시 후임 인선에 착수했다. 코미 국장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FBI 직원을 대상으로 연설 중 자신의 해임 소식을 TV로 접했으며, 처음에는 이를 장난으로 여긴 것으로 전해졌다.

백악관은 이번 해임은 ‘코미 국장이 무능하다’는 법무부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코미 국장은 지난 3일 청문회에서 “클린턴 전 장관의 최측근 후마 애버딘이 기밀이 포함된 이메일 수백, 수천 건을 전 남편에게 보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후 FBI는 이 진술이 잘못됐다는 입장을 내놨다. 백악관은 이 같은 조직 내 혼선을 들어 해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백악관의 입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임에 앞서 ‘러시아 커넥션과 무관하다’는 내용의 증명서를 상원 법사위원장 린지 그레이엄 의원에게 보냈다. 미 의회와 FBI는 지난 대선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그 측근이 러시아와 내통했다는 의혹을 조사하고 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수사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 해임을 단행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10년 임기의 FBI 국장이 해임된 것은 이례적이다. 코미 국장의 임기는 2023년까지다. FBI 역사상 해임된 국장은 1993년 개인 비위를 저지른 빌 세션스가 유일하다. 게다가 코미 국장은 대선을 불과 11일 앞둔 지난해 10월 28일 이메일 스캔들을 재수사하겠다고 밝혀 트럼프 대선 승리의 일등공신으로 떠오른 인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코미 국장이 러시아 내통 의혹 수사를 공식 확인하면서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지난 3월 20일 코미 국장은 청문회에서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의 공모 가능성을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트럼프타워 도청을 지시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도 사실상 부인했다.

NYT를 비롯한 미 언론은 이번 해임을 1973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하야를 초래한 ‘토요일 밤의 대학살’에 비유했다. 당시 닉슨은 워터게이트 수사를 맡은 특검을 경질하기 위해 법무장관과 법무부 부장관을 연이어 해임했다. 그러자 탄핵 여론이 들끓었다.

밥 케이시 상원의원은 “러시아 내통 의혹 수사를 위해 법무부는 즉시 특검을 임명하라”고 촉구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번 해임은 은폐”라며 “신임 FBI 국장은 백악관과의 충돌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밤 NBC방송 인터뷰에서 이번 해임과 러시아 스캔들 수사는 연관성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10일 백악관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만날 것이라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이런 시점에 러시아 외무장관을 만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