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9시27분 터널 입구 주변에서는 아카시아와 라일락 향기가 달콤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터널로 들어서자마자 숨을 쉬지 못할 정도의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사고 차량의 화재가 완전히 진화된 뒤 정확히 24시간 만에 찾은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 환추이구 타오자쾅 터널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차량들이 무심하게 지나갔다. 전날까지만 해도 교통이 완전 차단된 상태였다. 검게 그을린 터널 벽과 냄새만이 전날 한국 유치원생 10명을 포함해 12명의 목숨을 앗아간 통학버스 화재 참사 현장임을 실감케 했다.
현장을 방문한 유족들은 말끔히 치워진 사고 현장에 분개했다. 유족들은 “아이들이 떠난 자리를 보고 싶다”며 중국 당국에 현장 답사를 요구했다. 안전 문제를 이유로 내세우는 중국 측과 하루 종일 실랑이를 하다 유족들은 밤에서야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유족들은 불로 그을려진 바닥을 어루만지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일부는 바닥에 엎드려 통곡했고, 숨진 자녀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기도 했다.
현장 방문에 앞서 희생된 가은(5)양 아버지 김미석(40)씨와 상률(4)군 아버지 이정규(37)씨는 사고대책본부가 차려진 창웨이호텔에서 어렵게 인터뷰에 응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과 아들을 하늘나라로 보낸 두 아버지는 “어제는 경황이 없어 아이가 죽었다는 게 실감이 안 났지만 지금은 너무 힘들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어제 따라 유난히 유치원에 가기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보낸 일을 떠올리며 “우리가 모두 죄인”이라고 자책했다. 가은양은 사고 당일 마른기침을 하며 헛구역질을 했지만 그대로 유치원차에 태웠다. 상률군도 아침에 엄마가 옷을 입혀줄 때 사고를 예견한 듯 “버스가 뜨겁다”며 유치원에 안 가겠다고 떼쓰는 걸 겨우 달래서 보냈다. 상률군은 6개월 된 동생과 떨어져 한국에서 지내다 3월 말 중국에 왔고 이제 유치원에 다닌 지 한 달밖에 안 됐다. 아이들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이날 새벽 시신을 확인한 가은양 아버지는 “아이가 아직도 다시 살아 돌아올 것 같다”면서 “끌어안고 데리고 살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했다.
웨이하이시 한인회는 시내에 분향소를 마련하겠다는 뜻을 전했지만 유족들은 정중히 사양했다. 고마운 마음은 알겠지만 사고 원인 규명이 먼저라는 생각 때문이다. 보상 문제도 나중 일이다. 그래야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당시 통학버스는 청소차와 추돌한 직후 앞부분에서 화재가 발생한 뒤 27분 만에야 진화됐다. 유족들은 사망한 기사의 운전 미숙 때문인지, 차량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왜 제때 구조가 이뤄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규명을 요구했다. 이날 예리윈 웨이하이시 부시장은 “베이징에서 온 전문가들이 조사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참사 현장을 지나던 다른 차량 운전자들이 사진과 영상만 찍고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당시 터널 안이 어두워 지나던 차량 운전자들도 구조에 나서기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웨이하이=글·사진 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中르포]“유치원 가기 싫다는 아이 억지로 보냈는데…” 오열
입력 2017-05-11 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