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마사지도 해드리고 효도도 할 테니 어버이날 기대하세요.”
김신혜(63·여)씨는 꼬불꼬불한 글씨로 가득한 편지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번 어버이날도 어김없이 다섯 아이로부터 감사하다는 편지와 전화를 한가득 받았다. 김씨에겐 4남1녀의 자녀가 있다. 배 아파 낳은 아이는 첫째 유상연(33)씨뿐이다. 둘째 하연(29)씨와 셋째 진(16)군, 막내 에스더(10·여)양은 입양했고 넷째 김호현(15)군은 위탁받았다. 김군의 경우 행방불명된 부모를 다시 찾을 때까지 맡아 기르고 있다.
결혼 전부터 피아노 학원을 운영해온 김씨는 부모 잃은 아이들에게 어머니가 되어주고 싶었다. 첫째가 12살 되던 해 처음으로 하연이를 입양했다. 가족도 반대하지 않았다. 하연이는 “엄마가 형만 사랑한다”며 물건을 훔치는 등 말썽 피우는 날이 많았다.
김씨는 고민 끝에 고3이던 첫째를 남편과 서울에 남겨둔 채 둘째를 데리고 강원도 횡성군으로 이사했다. 훔칠 게 없으면 도벽도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곳에서 감자떡을 만들어 팔았다.
뜻밖의 시련이 김씨를 찾아왔다. 녹내장이었다. 앞을 볼 수 없었다. 벌여놓았던 감자떡 사업도 어려워져 빚이 쌓여갔다. 하나님께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게 해 달라”며 매일 기도했다.
녹내장은 거짓말처럼 완치됐다. 그 후 김씨는 입양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강사로 나서게 됐다. 자신이 입양맘이지만, ‘장애를 가진 어린아이들은 입양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두 번째 입양을 결심했다. 뇌병변 지체장애 1급을 앓는 진을 2007년 얻었다. 진은 뼈는 자라지만 근육은 성장을 멈추는 근육강직증 때문에 벽을 잡지 않고서는 걸을 수가 없었다.
진의 수술은 6년을 끌었다. 철심을 심고 다리 근육을 자르는 수술에 아이는 아파했다. 김씨는 진의 다리를 바로잡기 위해 벽에 기대게 하고 교정용 삼각틀 위에 세워놓기도 했다. 바르게 키워야겠다는 욕심에 다그치는 날이 늘어났다. 그렇게 고생했지만 찾아온 것은 뇌종양이었다.
넷째를 받아들인 것도 그때 무렵이다. 넷째는 형과 숨바꼭질을 하는 등 아픈 김씨 대신 셋째의 친구가 되어줬다. 김씨는 집안에 활기가 돌기 시작하자 “60세가 되기 전에 하나만 더 입양하자”는 생각에 막내를 입양했다. 기관 7곳서 나이와 경제적 형편을 이유로 거절한 끝에 간신히 이뤄진 입양이었다.
막내는 2번 파양된 아픔으로 일주일간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의 문을 열었고 함께 웃을 일이 많아지자 기적처럼 김씨의 뇌종양도 완치됐다. 그 후 모든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 첫째는 결혼해 가정을 이뤘고 둘째는 취업에 성공했다. 투포환 선수인 넷째는 전국대회 4등을 차지했다. 서울에 있던 남편과의 살림도 올해 합쳤다.
11일은 입양의 날이다. 김씨는 “입양 관련 사건·사고가 잦아 부모들이 입양을 꺼리고 있다”며 걱정스레 말했다. 국내 입양은 2007년 1388명에서 2015년 683명으로 감소했다. 특히 건강 이상을 앓고 있는 아동 입양은 2015년 24명으로 전체의 3.5%에 머물고 있다.
셋째 진을 키우며 한 번도 입양을 후회한 적 없다는 그다. 김씨는 “가족이 함께 등산을 가면 앞다퉈 셋째를 돕는 등 아이들 모두 주변을 사랑할 줄 아는 멋진 사람으로 성장했다”며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입양”이라고 자랑스레 말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가슴으로 낳은 4남매… 행복 주려다 큰 사랑 받네요”
입력 2017-05-11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