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의 한·미 관계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문 대통령이 풀어갈 양국 관계를 바라보는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는 사실 기대보다 우려가 많다. 미국과 중국이 석유공급 중단 등 강도 높은 대북 제재를 논의하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개성공단 재가동 등 유화책을 쓸 경우 대북 압박을 위한 국제공조에 균열이 생기기 때문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배치에 대한 문 대통령의 부정적인 입장도 이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심지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 껄끄러웠던 양국 관계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한·미동맹의 틀 속에서 남북 대화를 추진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핵심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며 양국 관계를 낙관하는 전문가도 있다.
한국 대선이 끝난 직후 9일(현지시간)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을 상대로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워싱턴DC의 대표적인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과 국제안보 분야에서 실용적 접근을 중시하는 연구기관 스팀슨센터의 앨런 롬버그 석좌연구원, 미국 내 대표적인 북한 인권 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이 각각 인터뷰에 응했다. 이들의 답변을 주제별로 재구성했다.
개성공단과 사드 갈등
클링너 선임연구원과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문 대통령이 개성공단 재가동 공약을 이행할 경우 한·미 간 갈등이 불거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개성공단 가동을 재개하고 공단 규모를 2000만평까지 확장하는 등 남북 경협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클링너 연구원은 “개성공단 재가동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를 위반하는 것이라는 게 미국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유엔은 회원국들에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기여하는 재정적 지원을 금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클링너 연구원은 “문 대통령은 전시작전권 이양, 한국의 남북문제 주도권 주장 등 외교안보 분야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책을 상당수 부활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스스로를 ‘미국의 친구’라고 말하고 한·미동맹이 한국의 외교와 국가안보의 가장 중요한 토대라고 하면서도, 미국에 ‘노(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히는 등 불분명한 구석이 있다”고 경계했다.
사드에 대한 문 대통령의 기존 입장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사드는 한국의 방어를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며 “한국이 자국의 안보에 핵심적인 사안에서 입장을 번복할 수 있다는 의사를 중국이나 국제사회에 보인다면 위험한 선례를 남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이 사드 철수를 요구할 경우 미국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롬버그 석좌연구원은 “문 대통령이 북한에 손을 내밀더라도 한·미동맹의 토대 위에서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고, 한반도 비핵화가 남북관계의 핵심 목표라고 밝혔다”며 문재인정부의 양국 관계를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그는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이에 차이가 존재하지만 두 사람이 선의를 가지고 협력한다면 양국 관계는 건설적이고 생산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미 정상회담 시기와 준비
한·미 정상회담 시기와 관련해 롬버그 석좌연구원은 “빠를수록 좋다”는 견해를 밝혔고,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반응을 보여 의견이 갈렸다. 롬버그 석좌연구원은 “문 대통령이 국정을 조기에 안착시키고 싶은 만큼 북한의 점증하는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한·미 간 회담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롬버그 석좌연구원은 “그러나 양국 정상 모두 회담의 성과를 극대화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준비를 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한국의 내각이 구성된 뒤 정상회담을 추진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비록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한·미 정상회담이 한 번도 열리지 않았지만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각각 한국을 방문하는 등 고위급 차원의 접촉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롬버그 석좌연구원은 “누구든 지혜를 독점할 수 없으며, 서로 협력하면 각자 노력하는 것보다 더 많은 걸 성취할 수 있다”며 “두 지도자는 서로 상대방의 얘기를 경청하고 차이를 드러내기보다 공통의 기반을 찾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 관계가 껄끄러웠던 걸 상기시키며 문재인정부가 똑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현명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롬버그 석좌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한·미 관계를 잘 모를 수 있지만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인 문 대통령은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문 대통령이 과거 경험에서 오는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2001년 3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처럼 불행한 회담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시 두 정상은 대북정책을 놓고 극명한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원칙’의 문재인 vs ‘거래’의 트럼프
문 대통령이 ‘원칙’을 준수하는 인권변호사 출신인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거래’에 익숙한 기업가 출신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다른 점이 많다. 인생역정과 세계관도 전혀 다르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도 이런 두 사람의 차이를 꿰고 있다.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성장과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큰 정부’(문재인)를 지향할 것인지, ‘작은 정부’(트럼프)를 추구할 것인지를 놓고도 생각이 크게 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 만큼 두 사람이 만나 대화할 때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거래를 하는 사람도 원칙이 있고, 원칙을 중시하는 사람도 거래를 한다”며 “두 대통령이 각자 양국의 안보와 동맹 강화에 헌신하는 지도자인 만큼 서로 동의할 수 있는 것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두 지도자가 동의할 수 있는 의제들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손상시키지 않는 공정무역과 일자리 창출, 경제 회복 등을 꼽았다.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서로 만나 친밀감과 유대감을 형성하려면 개인적인 성격과 취미, 성장 스토리 등을 미리 파악해둬야 한다고 주문했다.
롬버그 석좌연구원은 “문 대통령이 원칙을 중시하는 변호사 출신이지만 경험이 많은 정치인이기도 하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이 살아온 길이 서로 다르고 성격도 다르지만 동맹을 강화하고 개인적 친밀감을 형성하려는 마음이 일치한다면 두 사람 모두 성공적인 대화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문재인 시대- 한·미 관계 진단과 조언] “文-트럼프, 준비 잘해 정상회담 성과 극대화해야”
입력 2017-05-11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