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0일 낮 대한민국의 19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타종과 예포 발사, 축하공연 등이 없었고 공식 취임식도 열리지 않았다.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열린 ‘취임선서 행사’에는 5부 요인과 국회의원, 장·차관 등 300여명만이 참석했다. 20여 분간 진행된 이 행사 역시 허례허식이 전혀 포함돼 있지 않았으며 권위주의적 요소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현직 대통령 탄핵사태에 따른 오랜 국정 공백과 안보 위기라는 엄중한 나라의 현실을 반영해 조촐하게 치러진 것이다. 여기에는 호화로운 취임식을 할 계제가 아니라는 문 대통령의 의중도 반영됐다고 하겠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를 갈음하는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임기 5년을 이끌어갈 국정 기조를 밝혔다.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사에 비해 분량이 크게 적었음에도 압축적이고 강렬한 메시지를 담았다. 문 대통령은 통합과 소통을 국정 운영의 최우선 기조로 제시했다. 그는 “2017년 5월 10일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억될 것”이라며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도 섬기겠다고 약속했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고 주요 사안은 직접 언론에 브리핑을 하며 퇴근길에 시장에 들러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다고 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을 끝내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대화하고 야당과는 정례적으로 만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취임선서도 하기 전에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당사와 국회 대표실을 연이어 방문해 야당과의 협치, 타협을 역설한 것도 이러한 본인의 의지를 첫날부터 행동에 옮긴 것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필요하면 곧바로 워싱턴으로 날아가고 베이징과 도쿄는 물론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다고 밝혔다. 사드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및 중국과 진지하게 협상하겠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의 국정 기조는 국민이 원하는 ‘통합되고 평화로운 나라’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 만들기와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실천이다. 이전에도 많은 대통령들이 취임사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될 것이며, 야당은 국정의 동반자로 대우하겠다고 외쳤지만 말뿐이었다. 집권 내내 현실은 정반대였다. 자신의 지지자들을 대변하는 데 급급했고 야당과는 원수처럼 지냈다. 오로지 거수기 역할에 충실한 여당하고만 소통했다.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에 취해 있는 동안 친인척과 가신, 비선 실세는 재벌과 유착하고 온갖 청탁과 비리에 연루됐다. 축복 속에 탄생한 여러 정권에서 이러한 일을 반복했고, 그 결과 나라꼴은 이 지경까지 왔다.
문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고 솔직한 대통령이 되겠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다”고 밝혔다. 진정성이 읽힌다. 우리 국민은 모든 일을 다 잘해내는 슈퍼 대통령을 원하는 게 아니다. 편 가르기 하지 않고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대통령이면 된다. 정직하고 국민을 받드는 정치를 하는 대통령을 원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빈손으로 취임하고 빈손으로 퇴임하는 대통령이 되겠으며 국민 여러분의 자랑으로 남겠다고 다짐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약속한 것들을 제대로 지킨다면 5년 뒤 퇴임할 때 국민들의 박수갈채를 받을 것이고,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를 마감하게 될 것이다.
[사설] 문 대통령, ‘통합과 소통’ 국정기조 반드시 실천하길
입력 2017-05-10 1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