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남성욱] 문 대통령은 워싱턴 거쳐 평양 가야

입력 2017-05-10 17:34

이변은 없었다. 여론조사 예상대로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했다. 영광의 순간은 잠시다. 막중한 책임과 권한 속에서 대통령의 시간이 지나갈 것이다. 임기 5년 동안 수많은 결정이 대통령의 어깨를 짓누를 것이다.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집무실 책상에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라는 명패를 놓았다. 1953년 1월 퇴임식 때 트루먼 대통령은 이 모토의 어원에 해당하는 표현으로 국민에게 명언을 남겼다. “대통령은, 그가 누구든,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The President-whoever he is-has to decide).”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 기간 대북정책 공약으로 △한국 주도의 비핵화 협상 △남북정상회담 추진 △개성공단 재가동과 10배 이상 확장 등을 제시했다. 남북대화로 신뢰를 형성하면서 한국이 능동적으로 비핵화 논의를 주도해 해결책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반적으로 공약은 지난 9년간 집권했던 보수정부 정책의 급격한 전환을 예상하게 한다. ‘Anything but 이명박·박근혜 정책’ 가능성이 높다. 전임정부가 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 국제공조에 비중을 실었다면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하는 민족공조에 힘이 실릴 것이다. 남북이 협상으로 긴장을 완화하고 문제 해결에 주도권을 확보하는 기본 전략은 과거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과 유사하다. 새 정부의 대북정책이 당면한 핵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데 고려할 만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교하게 수립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선거 초반 워싱턴보다 평양을 먼저 가겠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야기했었다. 후반 들어 워싱턴 우선방문 발언으로 진정되었지만 향후 정책 추진 순위를 둘러싸고 쟁점이 될 부분이다. 문 대통령은 적당한 시기에 평양을 방문해서 김정은과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이다. 상대가 있는 현안에서 만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접촉은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대화의 시점이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서 한·미동맹의 기조를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다. 사드배치 및 비용 부담, FTA 재협상 등 현안은 북핵보다 비중이 결코 낮지 않다. 국익 수호 차원에서 워싱턴을 지나 평양으로 가야 한다. 모든 여건을 구비해 놓고 평양과 접촉해도 늦지 않다.

둘째, 민족공조와 국제공조의 균형을 유지하자. 보수정부의 대북정책이 지나친 국제공조 우선 기조였다면 불균형을 시정하는 것은 일면 타당하다. 하지만 역으로 무게중심이 지나치게 민족공조에 실린다면 이 또한 어려움을 야기할 수 있다. 북한의 4·5차 핵실험 이후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 2270, 2321호는 북한에 대한 현금 등 각종 경제적 지원과 협력에 상당한 제한을 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개성공단 재개 공약은 선거 기간 토론과정에서 비핵화 협상 재개 등 전제조건이 추가되어 바로 재가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정은 정권과의 협상은 김정일 시대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북한은 지난해 1월 4차 핵실험 이후 핵 보유를 선언하고 자신들이 비핵화의 대상이 아니라 세계비핵화의 주체라고 선언했다. 평양은 비핵화가 아니라 군축 협상을 하라며 대화 시도 및 도발 등 다양한 전략 카드를 모색할 것이다. 2007년 10·4 정상회담 당시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미·중 정상회담도 해법을 찾지 못하는 것이 북핵 문제다. 남북 당국 간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와 한계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 첩경이다. 아무쪼록 새 지도자가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로 실타래처럼 꼬인 한반도 문제를 무난히 해결하기를 기대한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