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취임 이후 여소야대 국회로 인해 국정운영에 발목을 잡힌 사례는 적지 않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국무총리 임명에서부터 거대 야당의 견제에 시달렸다. 결국 김대중정부의 첫 내각은 전임 정부 총리였던 고건 전 총리의 제청에 따라 구성됐다.
김 전 대통령이 이끌던 새정치국민회의는 1996년 15대 총선에서 79석을 얻는 데 그쳤다. 김 전 대통령은 김종필 전 총리가 이끌던 자유민주연합과 ‘DJP 연합’을 이뤄 1997년 15대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새 정부는 출범 시작부터 삐거덕거렸다. 거대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김 전 총리 임명을 집요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결국 김영삼정부의 마지막 총리였던 고 전 총리는 김대중정부 1기 내각을 제청하면서 사표도 함께 제출해야 했다. 이후에도 김 전 총리는 반 년 가까이 총리서리 신분으로 국정에 참여해 헌정사상 최장수 총리서리 진기록을 세웠다. 국회가 총리임명동의안을 통과시킨 것은 안건 상정 후 167일이 지난 1998년 8월 17일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역시 국회가 여소야대일 때 취임했다. 2000년 16대 총선 결과에 따라 원내 1당은 야당인 한나라당이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새천년민주당 당적을 버리고 열린우리당으로 옮김으로써 여소야대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결국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 자민련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하면서 노 전 대통령은 두 달간 직무정지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1987년 직선제 개헌 후 첫 대통령인 노태우 전 대통령 역시 일부 기간을 제외하고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국정을 이끌어야 했다. 당시 여당 민주정의당은 1988년 13대 총선에서 125석을 얻는 데 그쳐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노 전 대통령 시절 5공 비리 청문회가 열릴 수 있었던 것도 여소야대 상황에 힘입은 바가 컸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1990년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의 3당 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을 창당, 여소야대 정국을 뒤집었다.
글=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사진=최종학 선임기자
여소야대 정국 ‘흑역사’
입력 2017-05-10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