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9일 사실상 당선됐다는 소식에 주요 외신들은 “진보주의자가 한국호를 이끌게 됐다”고 전하면서 한국의 대외 정책이 크게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다수 외신들은 문 후보가 대북 유화정책을 펴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또 문 후보가 압도적 표차로 승리함으로써 수개월간 지속된 한국의 정치적 혼란 상황이 잠잠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문 후보 개인에 대해서는 ‘부패하지 않은 깨끗한 후보’라고 소개했고, 취임식도 소박하게 치를 것이라고 전했다. 또 청렴하고 온화하지만 누구라도 원칙에 맞지 않는 얘기를 하면 ‘화도 낼 줄 아는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또 인권변호사로 오랫동안 일한 사실을 소개하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 보호에 앞장선 인물’이라고 전했다.
영미권 반응
미국 언론들은 문 후보의 당선으로 서울의 대북정책이 재편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CNN방송은 문 후보를 ‘햇볕정책의 적임자’라고 평가하면서 “문 후보가 고고고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배치에 도전하면서 북한과는 대화의 물꼬를 틀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문 후보가 10년 가까운 보수정권의 통치를 끝냈다면서 향후 북한을 달래는 정책을 펴나갈 것으로 예상했다. 로이터는 “문 후보가 지난 1월 펴낸 책에서 ‘미국을 향해 노(No)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는 사실을 거론하면서 미국에 대해 강경하게 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또 문 후보가 삼성과 현대 등 재벌 기업들을 개혁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일자리 창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제재와 압박에 초점을 두고 있는 반면, 한국의 새 정부는 남북대화 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 등 유화책을 꺼내들 가능성이 많아 한·미 간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즐겨보는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는 미국인 4명을 억류하고 있는 북한의 도발 위협이 여전한 상황에서 한국의 새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정책에서 이견을 보일 수 있다고 예상했다.
영국 BBC방송은 문 후보가 미국의 사드 배치에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대북 압박을 강화하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도 ‘문재인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앞서 미 국무부는 8일(현지시간) 논평을 내고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의 새 대통령과 긴밀하고 건설적이며 깊은 협력관계를 지속해서 유지해 나가길 고대한다”고 밝혔다.
카티나 애덤스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인은 “한국 국민들은 대선 과정을 통해 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변함없는 책무를 잘 보여줬다”면서 “한·미동맹은 앞으로도 계속 역내 안정과 안보를 위한 핵심(linchpin)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 대한 미국의 방위공약은 철통같다”며 “특히 북한의 위협을 방어하는 데 있어 우리의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반응
관영 신화통신을 비롯한 중국 언론은 문 후보의 당선을 신속히 보도하면서 그의 당선으로 사드의 한국 배치 결정 이후 악화된 한·중 관계 개선을 기대했다.
뤼차오 랴오닝성 사회과학원 한반도연구센터 주임은 관영 글로벌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한·중 관계 개선이 될 것이라며 그 열쇠는 사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뤼차오는 “한국과 중국의 무역량은 미국과 일본의 무역량을 합한 것보다 많다”며 “이미 한국은 사드로 냉각된 한·중 관계로 인해 큰 손실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경제계는 새 대통령이 한·중 관계를 개선시킬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길 기대하고 있다”면서 “한·중 양자 관계를 개선시킬 많은 카드가 없는 한국으로서는 사드가 중요한 ‘바기닝 칩’(협상수단)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차이젠 푸단대 한국학연구센터 교수는 기고문을 통해 “차기 한국 대통령이 국내적으로 사회분열과 대외적으로 한반도 긴장 완화 및 한·중 관계 개선이라는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선 한국사회가 내부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 스캔들로 인해 양분돼 있고 침체된 경기도 살려야 하는 과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외교적으로는 현재의 불균형적인 정책에서 벗어나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고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안보는 미국에 기대고 경제는 중국에 의지하면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현명하게 외교 전략을 폈지만 사드 배치 선언 이후 균형이 깨졌다”면서 “한국의 새 대통령은 한·중 관계를 올바른 궤도로 돌려놔야만 하고 이것이 국내와 외교적 안정을 이루는 전제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반응
NHK방송은 문 후보가 일부 보수 성향의 영남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고르게 지지를 받은 점을 평가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국정을 재건하라는 국민들의 폭넓은 요구로 당선됐다”고 전했다.
아사히신문은 문 후보가 2015년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요구해 온 점을 들면서 위안부 문제로 문 후보와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보수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문 후보를 ‘좌파 후보’라고 규정하면서 “위안부 문제와 과거사 문제 등을 둘러싸고 한·일 관계가 난국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다만 이날 아베 총리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한국 새 대통령과 한·일, 한·미·일 간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새 대통령과) 가능한 한 빨리 통화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 정부는 위안부 합의를 착실히 이행할 것을 한국에 끈질기게 요구한다는 방침”이라며 한국 새 정부가 위안부 합의 재교섭을 추진할 가능성에 경계심을 드러냈다.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도 “한·일 양국의 협력과 연대는 북한 문제를 비롯해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불가결하다”며 “새 정부와 위안부 합의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소중한 이웃나라”라고 덧붙였다.
기시다 외무상은 한·중·일 3개국 정상회의와 관련해 “그간 의장국으로서 정상회의 개최를 제안해 왔다. 중국 등 관계국과 구체적인 일정을 조율하겠다”며 적극적인 추진 의사를 나타냈다. 문 후보가 3국 정상회의에 응한다면 아베 총리와 첫 정상회담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의의 중국 측 참석자는 리커창 총리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신훈 기자 swchun@kmib.co.kr
“진보주의자가 한국호 이끌어” 대북정책 재편 전망
입력 2017-05-10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