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 일어난 탄핵 사태를 딛고 새 대통령이 탄생했다. 지난해 10월 1차 촛불집회가 열린 지 7개월 만이다. 지난겨울 우리는 더 높은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연인원 1000만명이 넘는 시민이 광화문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었고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평화적으로 최고 권력자를 퇴진시켰다. 어떤 정치세력이든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 과거의 잘못된 방식으로 군림한다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상식에서 벗어난 오만과 독선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줬다. 전 세계가 깜짝 놀랄만큼 수준 높은 시민혁명이 광화문광장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잃은 것도 많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고 현직 장관을 포함한 핵심 관료가 줄줄이 구속되면서 국정은 방향을 잃고 표류했다. 광화문 촛불시위대와 대한문 앞 태극기시위대로 대표되는 국론 분열은 광복 직후 험악했던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을 방불케 했다. 경기는 가라앉았고, 경제 회생의 실마리는 찾을 수 없었다. 핵과 미사일을 앞세운 북한의 도발은 한반도 주변 정세를 급격히 냉각시켰다. 사드 한국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이 현실화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한반도에서의 무력충돌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대북제재 방법을 논의하는 동안 우리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을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오만·독선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10일 오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당선증을 교부하면 문재인 대통령은 곧바로 업무를 시작한다. 정권인수위원회조차 없다. 축하 인사를 받을 겨를도 없다. 지금까지 준비한 게 이만큼이라고 국민에게 곧바로 보여줘야 한다. 선거기간 쏟아낸 수많은 약속을 실행해야 한다. 몰아치는 폭풍우 속에 좌초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호의 키를 단단히 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수많은 과제를 풀 첫 단추는 통합이다. 양자구도로 실시된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주요 5개 정당 모두 후보를 냈고, 누구도 다수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했다. 국회에도 의석수 과반인 정당이 없어 순식간에 국정이 마비될 수 있다. 게다가 선거 패배의 상실감이 더해진 진영 갈등은 한동안 사회 곳곳에서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것이 분명하다.
문 대통령이 치를 첫 시험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축하 인사를 받기에 앞서 경쟁했던 다른 후보들에게 손을 내밀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 통합의 매개는 다름 아닌 인사다. 인사를 통한 권력분점은 새 대통령이 선거운동 기간 중 약속한 정책과제를 실현하는 발판이 된다. 참모들이 공을 다투고 자리를 나눠먹는 구태를 반복한다면 소중한 시간을 허비할 뿐이다.
문 대통령은 여러 정치세력의 도움을 구해 신속하게 국무총리를 임명하고 조각을 마쳐야 한다. 이후 총리와 장관들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보내 소신껏 일하도록 해야 한다. 총리를 중심에 둔 내각이 국회와 긴밀하게 상의한다면 그동안 충분히 작동하지 않았던 정부 각 부처의 업무가 곧 정상화돼 국정에 활력이 일 것이다.
문 대통령의 또 다른 주요 과제는 안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3개월 만에 새로운 대북정책을 확정한 뒤 구체적인 방법을 찾고 있다. 우리가 이 과정에서 제 역할을 못한 것은 안타깝다. 하지만 완전히 늦은 것은 아니다. 문 대통령은 가능한 한 빨리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한·미동맹을 공고히 다지겠다는 믿음을 주고 더 이상의 코리아 패싱이 없도록 입지를 확보해야 한다.
한·미동맹 공고화로 안보리스크 최소화를
이를 위해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주한미군 분담금 증액 및 사드 비용 재협상 등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여러 사안을 통합적으로 분석해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담대한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협상가인 트럼프 대통령을 교과서에 나오는 원칙론으로 설득하려 든다면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결정적인 의사결정에 한국이 빠지는 최악의 상황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못지않게 중국과의 관계 복원도 중요하다. 문 대통령은 먼저 “사드는 최소한의 방어수단이며 우리의 생존이 걸린 문제를 다른 나라와 협상할 수 없다”고 밝혀야 한다. 이후 북한을 포기할 수 없는 중국의 전략적 위치를 인정하고 북한의 핵 개발이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근본 원인이라는 점을 끈질기게 설득해야 한다. 가능한 채널을 모두 동원해 중국의 경제 보복이 양국에 큰 피해를 줬고,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우리의 입장을 전달해야 할 것이다.
정책 우선 순위 정해 하나씩 해결해야
문 대통령에게는 각계각층의 상충되는 이해가 쏟아질 가능성이 크다. 재계는 기업이 자신감을 갖고 글로벌 시장을 활보하도록 제반 여건을 마련해 달라고 나설 것이다. 사회적으로 핍박받고 경제적으로 외면당한 소외계층을 보듬어야 한다는 요구도 곳곳에서 분출될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부채가 1400조원을 넘은 상황에서 증세 없이 해결할 방법을 찾기도 어렵다. 근본적으로는 2%대 저성장 늪에 빠진 경제를 되살리고 심각한 청년실업을 해결해야 한다. 곧 찾아올 인구절벽에 대비해 미래의 성장동력까지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를 한꺼번에 이룰 수는 없다. 문 대통령이 수십년 쌓인 문제를 모두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국민들은 견해가 다른 정치세력, 지지하지 않는 반대파와 대화하고 조금씩 양보하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어떤 일을 먼저 할지 정하는 대통령을 바란다. 힘든 길을 걸을 때면 지친 사람을 부축하고 격려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어 한다. 문 대통령이 마음을 터놓고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도와 달라고 한다면 모든 국민이 기꺼이 힘을 모을 것이다. 그것이 국민 대통합을 이루는 길이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이다.
[사설] 문재인 대통령의 담대한 리더십을 기대한다
입력 2017-05-09 19:03 수정 2017-05-09 2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