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투표를 한다는 사람의 설렘, 1등으로 투표장에 왔다는 사람의 에너지, 떡볶이와 맥주 사이에 투표를 잡아둔 사람의 치밀함까지, 아침부터 SNS에 올라오는 투표 인증샷을 보고 있다. 포즈와 표정은 제각각 달라도 인증샷 찍는 마음엔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고, 그걸 보는 마음도 그렇다. 엿보는 재미와 연대감, 그리고 놀이가 가진 자연스러운 역동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투표는 관심의 영역에 있어야 유효하니, 놀이의 역동성은 투표 문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한 표의 가치에 대해 신나는 방식으로 건드리는 것이다.
투표소 건물 외벽은 자연스레 포토월이 되었고, 안에서 투표를 한 다음 밖에서 인증샷을 찍는 게 하나의 동선이 되었다. 안이나 밖이나 둘 다 앵글 밖으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며칠 전에 사전투표를 했다. 전국적인 체인망처럼 곳곳에 투표장이 있다는 게 무척 편하게 다가왔다. 결과적으로 나는 동행이 유년기를 보냈던 동네에 가서 투표를 했다. 사전투표를 추억여행과 연계한 셈인데, 꽤 괜찮은 세트인 것 같다. 그는 옛 동네에 갈 때마다 여기는 철호네 집이었고, 여기는 영훈이네 집이었다고 말한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모르지만 그들의 옛 집을 안다. 30년이 흐른 후, 어른이 된 소년은 옛 동네에서 투표를 했다. 그 당시에는 하지 못했던, 이제는 할 수 있는, 어른들의 놀이를.
투표소 밖으로 나온 후에야 그 작고 빨간 도장이 내 손 위에는 없다는 걸 알아챘다. “왜 난 도장 안 찍어주지?” 하니 동행이 폭소하며 “네가 찍었어야지” 한다. 아…. 바보가 여기 있었다. 왜 누군가가 도장을 손에 찍어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게 셀프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다시 기표소 안으로 들어가 도장만 좀 찍겠다고 할 수도 없고 말이다.
도장이 없다고 해도 투표한 손은 귀하기에, 나도 인증샷을 찍었다. 최대한 현란한 손놀림으로! 다만 다음번에는 3스텝으로, 제대로 찍을 것이다. 찍고(투표용지에), 또 찍고(손등에), 또 찍고(인증샷).
글=윤고은(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찍고 또 찍고
입력 2017-05-09 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