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121> 새 보안관이 왔다

입력 2017-05-09 17:23
영화 ‘하이눈’ 포스터

린지 그레이엄 미국 상원의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칭해 “마을에 새 보안관이 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시리아를 공격했을 때 “마을에 새 보안관이 왔음을 보여주었다”고 선언하더니 곧 이어 북한을 겨냥해 “마을에 새 보안관이 왔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이 ‘전임 보안관’ 버락 오바마 때와는 아주 달라질 것임을, 완력을 행사하는 데 거리낌이 없을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의 말을 듣자니 옛날 서부영화 명보안관들이 떠올랐다. 대표적인 캐릭터가 프레드 진네만의 걸작 ‘하이눈(High Noon, 1953)’의 윌 케인(게리 쿠퍼)이다. 겁먹은 마을사람들의 외면 속에 혼자 외롭게 흉악한 무법자들과 대결하는 케인의 모습은 당시 2차대전으로 인해 전쟁피로증이 만연한 국민정서 속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국의 고독한 결단이라는 정치적 입장과 겹쳐져 더욱 뜨겁게 다가온다. 그래선가 아이젠하워, 레이건, 클린턴 대통령은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이 영화를 꼽았다. 특히 클린턴은 백악관에서 17회나 이 영화를 틀게 하는 등 ‘고독하게 여론을 거스르는 결정을 할 때마다 이 영화에서 힘을 얻었다’고 한다.

게다가 케인 보안관은 1980년대 폴란드에서 자유노조운동이 한참일 때 민주화 투사들에게도 힘을 주었다. 권총 대신 투표함을 들고, 또 보안관 배지 대신 자유노조 로고가 박힌 휘장을 두른 케인 보안관의 모습이었다. 그 아래 적힌 문구는 이랬다. ‘1989년 6월 4일은 하이눈의 날’. ‘하이눈’이야말로 공산주의 대 자유민주주의의 결투를 그린 것이라는 은유였다.

그러나 보안관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편, 훌륭한 인물만 있는 건 아니다. 마을 유지나 악당의 돈과 권력, 무력에 눌려 허수아비나 방패막이가 되곤 하는 보안관, 또는 스스로 법인 양 권력을 남용하는 보안관도 있다. ‘마을의 새 보안관’이라는 트럼프가 혹시라도 이런 보안관이 돼서는 안 될 텐데 하는 걱정이 든다.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니.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