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재난의 컨트롤타워 격인 국민안전처가 비판에 직면했다. 봄철 화재를 막기 위해 만전을 기한다며 백화점식 대책을 내놓았지만 정작 강원도, 경북 일대에 사나흘 화마(火魔)가 들이닥치자 속수무책이었다.
국민안전처는 지난 3월부터 이달까지 3개월을 ‘봄철 소방안전대책 기간’으로 정하고 화재예방대책을 추진해 왔다. 당시 안전처는 “봄철은 화재 위험이 높은 계절”이라며 “산불예방을 위해 지자체, 유관기관과 공조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간 환경단체 녹색연합이 8일 밝힌 논평에 따르면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6일까지 12일간 하루 평균 8.5건, 총 111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최근 5년간의 4월 평균인 82건을 훌쩍 넘어선 셈이다.
정부가 산불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통합관리체계의 부재가 지목된다. 산불이 날 경우 진화는 소방 당국과 지자체가 맡지만 책임은 산림청에 있다. 안전처는 각종 예방·안전대책을 내놓는 데 그치는 수준이다.
지휘체계가 미흡하다 보니 초기대응도 쉽지 않다. 전국의 산불 진화용 헬기 137대 중 산림청이 보유한 헬기는 45대뿐이다. 나머지는 지자체 임차헬기 60대, 소방헬기 8대, 군헬기 24대다. 각기 다른 지역에 배치돼 있고 지휘권도 지자체장 소방서장 군수 등으로 흩어져 있다. 산림청 관계자는 “이번에 헬기가 최대 동원됐을 때 59대였다”며 “(헬기가) 전국에 흩어져 있어서 현장에 바로 투입되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재난문자 발송 주체도 불분명하다. 해일 홍수 등 13가지 자연재난은 안전처가 재난문자를 발송하지만, 지진은 기상청에 일임했다. 산불처럼 사람의 실수로 일어날 수 있는 사회재난은 아예 누가 문자 발송을 챙겨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주로 지자체가 안전처 승인을 받고 문자를 보내지만 긴급한 상황에서 협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이번처럼 혼선이 빚어지기도 한다. 안전처 관계자는 뒤늦게 “앞으로 자연재난뿐만 아니라 사회재난에 대해서도 문자 발송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문자메시지의 내용이 부실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꺼진 줄 알았던 불이 다시 번지자 강릉시는 8일 ‘성산면 산불 재발화에 따라 보광리, 관음리 주민은 안전한 마을회관으로 신속히 대피 바랍니다’라고 안내하는 데 그쳤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대피가 권고되는 상황과 의무적으로 대피해야 하는 상황을 구분해 안내하고, 안전한 대피 동선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체계적인 산불 진화를 위해 통제기관부터 조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산불 진화의 통제기관인 산림청은 산림 조성·관리가 전문이지 화재 진압 담당 기관이 아니다”며 “화재 진압은 국민안전처와 소방 당국이 책임지도록 하고, 관련 예산도 산림청이 아닌 소방 당국에 편성하는 등 근본적인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공 교수는 또 “소방서 헬기는 인명구조를 목적으로 만들어져 산불진화 전용 헬기와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산림청에 따르면 산림청이 보유한 산불진화 전용 헬기는 본체에 물탱크 등 전문적인 장비를 갖추고 있지만 소방서 등의 일반 헬기는 그렇지 않다.
김유식 한국국제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시·군에서 산불이 나면 시장이나 군수가 책임져야 하고, 국유림은 산림청이 일괄 관리하고 있고 있는 등 책임이 분산돼 있다”며 “책임소재를 조직적으로 개편하고, 지역마다 분산돼 있는 헬기 지휘체계 역시 정비해야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고 전했다.
글=최예슬 임주언 이형민 이재연 기자 smarty@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기획] 안전처, 재난 통합관리체계 부재… 산불나자 ‘불난집’
입력 2017-05-09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