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의석 하나 없는 신생정당 이끌고 엘리제궁 입성

입력 2017-05-08 18:27 수정 2017-05-09 00:49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당선인이 7일(현지시간) 파리 루브르 박물관 광장에서 열린 승리 축하행사에서 부인 브리지트 트로뉴와 함께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마크롱은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후보를 꺾고 나폴레옹 이래 최연소 지도자로 당선됐다. AP뉴시스
프랑스 대통령 당선인 에마뉘엘 마크롱(39)은 1804년 만 35세의 나이로 황제가 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이후 213년 이래 최연소 국가수반에 오르게 됐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명문학교를 거쳐 인수·합병(M&A) 전문가, 대통령 보좌관, 경제장관을 지낸 엘리트. 하지만 그는 자신을 ‘아웃사이더’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25세 연상 아내와의 러브스토리, 좌파 정부서 강행한 우파 정책, 장관직 사임 후 사실상 무소속 대선 출마 등 마크롱의 인생역정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마크롱은 1977년 12월 21일 프랑스 북부 소도시 아미앵에서 의사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파리 최고 명문 앙리 4세 고교를 졸업한 뒤 파리 낭테르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이후 엘리트의 산실 파리정치대학과 국립행정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마크롱은 2004년 재정감독청과 성장촉진위원회에서 공직 경험을 쌓은 뒤 2008년 투자은행 로스차일드로 옮겨 M&A 전문가로 큰 성공을 거뒀다.

마크롱은 2012년 대선 당시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 선거캠프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대통령 경제보좌관에 발탁됐다. 2014년 불과 36세의 나이로 경제산업디지털부 장관에 올랐다. 그는 중도좌파 올랑드 정부에서 친시장 정책을 펼쳤다. 샹젤리제 등 관광지구 상점의 심야·일요일 영업 제한을 완화하는 내용의 경제개혁법을 추진했고, 고용과 해고를 쉽게 만든 노동법 개정안 처리에도 앞장섰다. 정부와 사회당의 반발에 부닥친 마크롱은 지난해 4월 중도 신당 앙마르슈를 창당하고 8월 장관직에서 사임하면서 승부수를 던졌다. 그러고는 마침내 의석조차 없는 신생 정당을 이끌고 엘리제궁 입성에 성공했다.

마크롱 정부의 성패는 다음 달 11일(1차 투표)과 18일(결선투표) 총선 결과가 가늠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여론조사기관 오피니언웨이에 따르면 하원의원 577명을 뽑는 이번 선거에서 앙마르슈는 249∼286석, 중도우파 공화당은 200∼210석을 확보할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다수당인 사회당은 28∼42석, 극우 국민전선은 15∼25석을 차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앙마르슈가 과반 의석(289)을 얻지 못할 경우 국정운영 차질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기성 정당과 코아비타시옹(동거) 정부를 출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앙마르슈는 정치 신인과 여성, 다양한 인종적 배경을 가진 인물을 내세워 승리하겠다는 계획이다.

총선 승리와 함께 또 다른 과제는 ‘경제 살리기’다. 지난해 프랑스 경제성장률은 1.1%에 그쳤다. 실업률은 10%에 이르렀다.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38% 수준으로 유로존 평균(15%)의 배가 넘는다. 이미 프랑스 사회가 극우와 극좌로 나뉜 상황에서 얼어붙은 경기가 살아나지 못할 경우 분열과 갈등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상대적 박탈감은 극우 포퓰리즘의 득세로 이어질 수 있다.

그간 마크롱은 법인세 인하와 노동유연성 강화를 주장했다. 또 향후 5년간 500억 유로(약 62조원)를 투입해 경기활성화의 마중물로 삼을 방침이다. 여기에 공공부문 일자리 12만개를 감축해 재정적자를 낮추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이 같은 친시장·친기업 정책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 위협은 신임 정부의 또 다른 난제다. 대선 기간 문화적 다원주의를 강조한 마크롱은 관용과 안보의 조화라는 어려운 숙제를 떠안게 됐다.

마크롱은 8일(현지시간) 첫 공식일정으로 올랑드 대통령과 함께 파리 개선문을 찾아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추모행사에 참석했다. 마크롱은 오는 14일이나 15일에 공식 취임한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