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참사로 촉발된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둘러싸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기업들은 등록해야 할 화학물질 범위 확대로 인한 비용부담을 우려하는 반면 시민단체들은 기업들이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교훈을 벌써 망각했다고 비판한다. 화평법 개정안을 포함한 전반적인 화학물질 관리 정책은 차기 정부의 몫이다. 각 대선 후보들은 화학물질 관리정책의 수정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조금씩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화평법 개정안 둘러싼 갑론을박
환경부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입법예고한 화평법 개정안은 2015년 가습기살균제 사고의 재발 방지를 위해 도입된 기존 화평법의 규제 기준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등록이 필요한 물질을 현재 510종에서 7000여종으로 확대하고 이를 어길 경우 피해 여부와 상관없이 매출액 5%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또 기존 800여종이던 위해우려 물질을 1300여종으로 확대하고, 제품에 일정 기준 이상 위해우려 물질이 포함될 경우 환경부 장관에게 신고토록 규정하고 있다.
기업들은 개정안으로 발생할 막대한 비용부담을 우려하고 있다. 7000여종에 달하는 화학물질의 유해·위험성 자료를 준비하는 데 과도한 시간과 비용이 들고, 이 때문에 화학물질 생산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달 이런 내용의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일각에서는 하나의 화학물질을 등록하는 데 드는 비용이 1억원에 달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환경부의 설명은 다르다. 현재까지 등록이 완료된 5개 화학물질의 경우 시험자료 확보 비용은 880만∼1억원이 들었는데 기업들이 공동으로 물질을 등록하면서 기업당 발생한 비용은 100만∼67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기존 화학물질 510종 가운데 현재까지 376종에 대해선 공동협의체가 구성돼 각 기업이 부담할 비용은 그만큼 분산될 것이란 설명이다. 환경부는 개정안이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이자 기업에 부과된 최소한의 책임”이라는 입장이다.
대선 후보들, 저마다 다른 공약
4월로 예정돼 있던 화평법 개정안 논의는 대선 정국으로 일단 보류된 상태다. 차기 정부의 화학물질 관리정책 방향에 따라 화평법 개정안의 운명도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다.
환경운동연합이 5명의 주요 대선 후보에게 보낸 화학물질 관리 관련 질의에 대해서 답변을 거부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의 대선 후보는 가습기살균제 사고에 대한 전면 재조사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생활화학제품 전 성분 및 함량 등록의무제와 표시제 도입에 대해서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찬성’ 입장을 밝혔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도입에는 찬성하면서도 기업의 자발적 참여에서 시작해 의무제로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방안을 제시했다. ‘보류’ 입장을 밝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측은 유럽연합, 미국과 같이 살생물질을 별도 체계에서 관리하는 ‘살생물제 관리법’ 제정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8일 “살생물제 관리법은 환경부가 2019년을 목표로 제정을 추진 중인 안으로 새로운 공약으로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화학물질과 제품 안전관리를 통합하고 관리체계를 신설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4명의 후보 모두 찬성했다. 홍 후보는 공약집을 통해 화학제품 성분조사 확대 실시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가습기 사태’ 막을 화학물질 관리, 차기 정부선 이뤄질까
입력 2017-05-09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