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내 극우 돌풍의 가늠자가 될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가 7일(현지시간) 실시됐다. 친유럽연합(EU) 노선을 앞세운 중도신당 앙마르슈(전진)의 에마뉘엘 마크롱(39) 대표가 엘리제궁 입성이 유력한 가운데 시민들은 ‘프랑스 최연소 대통령이냐’ ‘극우 고립주의 대통령이냐’를 선택하는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현지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이른 오전부터 전국 6만6546개 투표소에 시민들의 투표 행렬이 이어졌다. 마크롱은 별장이 있는 북부 해안도시 르 투케에서 부인 브리짓 트로뉴(64)와 함께 투표에 참여했다.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48) 대표도 동거인인 루이 알리오(47) FN 부대표와 함께 임시 선거본부가 있는 북부 에넹보몽 투표소를 찾았다.
이번 대선은 사상 처음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상태에서 치러졌다. 2015년 11월 파리 테러 이후 국가비상사태가 지금까지 유지됐다. 정부는 테러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투·개표소 인근에 경찰과 군인 등 12만명을 배치했다. 한때 마크롱이 당선될 경우 승리 연설을 하기로 한 파리 루브르박물관 야외정원에서 수상한 물체가 발견됐다는 신고가 접수돼 300여명이 대피했지만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투표는 이날 오후 8시(한국시간 8일 오전 3시) 종료됐다.
이번 대선은 개방주의, 세계화를 주창한 마크롱과 탈EU, 프랑스 우선주의를 내세운 르펜의 극과 극 맞대결로 선거 초반부터 세계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현대 프랑스 정치를 이끈 공화당과 사회당에서 결선 진출자를 내지 못한 최초의 선거이기도 했다. 국회 내 의석이 없는 앙마르슈와 단 1석을 가진 FN이 결선투표에서 맞붙게 된 것을 두고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이 표출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 국정을 장악할 동력이 부족해 정국은 당분간 요동칠 전망이다. 결과에 따라 프랑스의 EU 잔류 여부도 결정된다. 다음 달 11일과 18일 실시되는 총선에서도 판도 변화가 예상된다. 대선 전 마지막으로 발표된 입소스 여론조사에선 마크롱의 지지율이 63%, 르펜이 37%로 집계됐다.
도박사들도 마크롱의 승리를 기정사실화했다. 오즈체커에 따르면 프랑스 대선 결과를 두고 베팅에 참여한 전체 인원의 76.64%가 르펜에게 돈을 걸었다. 르펜이 이길 가능성은 낮지만 ‘대박’을 바라는 사행심리가 반영돼 판돈이 몰렸다. 베팅업체 베트페어에선 당선자가 마크롱일 경우 1.06배, 르펜일 경우 10배의 배당률을 챙기는 것으로 결정됐다.
결선투표를 이틀 앞두고 마크롱 캠프 해킹사건이 막판 변수로 떠올랐다. 지난 5일 오후 2시쯤 공유 사이트 페이스트빈 등엔 마크롱 측에서 유출된 것으로 보이는 이메일과 회계 문서 등 9GB 분량의 자료가 올라왔다. 선거 운동과 언론 보도가 제한되는 시점을 단 4시간 앞두고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내부 정보가 공개됨에 따라 마크롱 측은 해명 기회를 갖지 못했다.
뉴욕타임스(NYT)는 “4챈(4chan) 등 지난해 미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원한 극우 온라인 사이트에서 이 내용이 확산됐다”며 미국 극우파의 개입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 문건이 러시아판 소프트웨어로 편집된 흔적이 발견되면서 러시아 개입설도 불거졌다. 프랑스 정부는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프랑스 선거관리위원회는 “자료가 부정하게 획득된 만큼 가짜 뉴스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시험대 위에 선 유럽 극우 돌풍
입력 2017-05-07 18:17 수정 2017-05-08 0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