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이 무슨 날인지 잘 모른다”고 윤우현(가명·36)씨는 말했다. 그가 입양된 프랑스에는 어버이날이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날과 아버지의 날이 있지만 윤씨를 입양한 양어머니가 미혼이어서 6월 셋째 일요일인 아버지의 날은 챙기지 않았다.
윤씨는 1986년 만 4세 때 입양됐다. 그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양어머니 밑에서 한국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날로 커져만 갔다. 당시를 “하루하루 내면이 죽어가는 것 같았다”고 표현할 정도다. 24년이 지난 2010년 대사관과 입양기관에서도 찾지 못한 아버지를 찾게 해준 건 페이스북이었다. 대사관을 통해 알게 된 아버지의 이름을 검색해 자신과 너무나 닮은 노인의 사진을 발견했다. 윤씨는 한눈에 ‘내 아버지’라고 확신했다. “81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86년 프랑스로 입양됐어요. 당신이 내 아버지인가요?” 그는 서툰 영어로 페이스북 메시지를 작성해 보냈다. 한 달 후 “맞는 것 같다. 더 자세히 얘기해볼 수 있겠느냐”는 답장이 왔다.
윤씨는 곧장 한국으로 향했다. 페이스북으로 친누나까지 찾고 나니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돌아온 한국에 부모는 없었다. 아버지는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고 어머니는 돌아가신 뒤였다. 그래도 어머니 묘소를 방문하고 누나와 삼촌 등 외가 식구를 만났다. “이제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고 윤씨는 당시를 회상했다.
가족을 찾아 한국에 오고서야 흐릿하게나마 어버이날을 알게 됐다. 2012년 5월 윤씨는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어버이날 메시지를 보냈다.
“건강 챙기세요.”
한국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은 윤씨는 2013년 이중국적을 취득하고 프랑스어학원에서 일자리도 구했다. 대학에서 한국어 수업을 들어 이제 짧게나마 한국말 대화도 가능하다. 그는 7일 “핏줄을 찾는 데 모든 걸 쏟으며 살았는데, 지금은 내 아버지가 누구고 어디 있는지 알기 때문에 이 세상에 나 혼자라는 느낌이 훨씬 덜하다”고 말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린 건 아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버렸다는 죄책감에 지금까지도 만나기를 꺼린다. 가끔 누나를 통해 용돈을 보내고 페이스북 메시지로 안부를 묻는 게 전부다.
그럼에도 윤씨는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홀트아동복지회에 따르면 자신의 뿌리를 찾아 달라는 해외 입양인의 요청은 연간 500여건에 이른다. 부모와 연결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홀트 관계자는 “기관에 남아 있는 정보가 부족하거나 친부모가 정보 공개를 거부하는 등의 이유로 가족과 연결되는 해외 입양인은 30%대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해외 입양인에게 친부모를 찾는 일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내 입양인은 말 그대로 친부모를 찾는 것이지만 해외 입양인은 여기에 자신의 문화를 찾는다는 의미까지 더해져 ‘뿌리 찾기’가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입양 기록과 관련 서류를 제대로 보관하는 기본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입양 후 권리 문제를 사전 차단하기 위해 친부모에게 입양 후 아이를 찾지 못하게 하는 각서를 쓰게 하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정 교수는 “제도가 미흡했던 때에는 입양인이 신문이나 방송에 나와 가족을 찾는 게 최선이었고 개인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었다”며 “정부가 2012년 ‘뿌리 찾기’를 지원하는 중앙입양원을 설립하긴 했지만 아직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임주언 이재연 기자 eon@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페북’이 이어준 天倫… 죄책감에 만남 주저하는 ‘父情’
입력 2017-05-08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