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범모 동국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르네상스맨?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 꼴이죠”

입력 2017-05-07 21:04
논문집 ‘한국미술론’을 낸 윤범모 동국대 석좌교수는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4일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술사의 명품을 소재로 한 시집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최종학 선임기자

윤범모(66) 동국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가 40년 연구생활을 정리한 논문집 ‘한국미술론’(칼라박스)을 냈다. 고구려 벽화, 조선시대 도화서 제도, 조선시대 후기의 책가도와 민화, 나혜석 이인성 이쾌대 등 근대기 작가론, 한국 현대미술의 자생성 문제….

책에 실린 논문 주제들이다. 한국 고미술에서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연구 범위와 활동 분야의 광폭 행보는 놀라울 정도다. 전문 분야에 함몰되기 쉬운 학계 풍토에서는 이례적이다.

‘미술계의 르네상스맨’ ‘통섭의 연구자’로 불리는 그를 지난 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민일보사에서 만났다. 그는 23년 재직했던 가천대(옛 경원대)에서 지난해 정년퇴임했다.

“르네상스맨요? 허허, 그건 그 시대에 사람이 없어서였지요. 속담에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 하지 않아요. 제가 그 짝이었지요.”

윤 교수의 학문적 뿌리는 한국 근대미술이다. 그는 “누구도 근대미술을 다루지 않아 불모지였다. 그걸 제가 한 거다. 원로 작가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증언할 유족마저 사라지는 걸 보며 이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여년 하다 보니 근대미술사 전문가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공부하다보면 다른 빈자리가 보였다. 그 빈자리를 채워 가다보면 어느 새 또 그 분야 전문가가 되더라”며 자신이 통섭의 학자가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40대 초반 학계에 입문하기 전 전시기획자로, 비평가로 활발히 활동했다. 강단에 서서도 그는 현장과 유리되지 않았다. 2014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달콤한 이슬’ 등을 기획했다. 이 역시 ‘굽은 나무론’으로 설명했다.

“지금이야 큐레이터가 인기 직업이지만 30년 전에는 그러지 않았어요. 젊은 남자는 발 담그기를 특히 꺼려했던 직종이지요. 잘났으면 작가하지 작가 뒷바라지하는 비평가, 큐레이터를 왜 하겠어요.”

그렇게 그는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학자이면서 동시에 비평과 전시기획을 하는 드문 사람이 됐다. 학문적 경향에서도 고대에서 현대까지 종횡무진하는 자신에 대해 “좌충우돌하며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탐구하고자 해온 편력의 산물”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어떠한 경우에도 얽매지 않는 주체적인 삶을 뜻하는 ‘수처작주(隨處作主)’를 강조한다. “전문 영역을 가지려면 그 과정에서 배고픈 시기를 견뎌낼 수 있어야 해요. 누가 뭐래도 내 길을 간다는 주인공 의식이 필요하지요. 예술하는 제자들에겐 이런 마음 자세가 특히 요구되지요.”

윤 교수는 “지금까지 쓴 글을 보니 1000편이 넘는다. 다작의 학자였던 것 같다. 한데 다시 읽어보니 반은 허접한 글이더라. 그걸 청소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해갈 것”이라고 했다. 이번 책은 그런 작업의 첫발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사진=최종학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