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유형진] 샤이 촛불

입력 2017-05-07 17:26

고백하건대 지난 가을부터 겨울 동안 타올랐던 촛불집회에 한 번도 나가질 못했다. 너무 아쉽고도 부끄럽다. 토요일마다 개인적으로 뿌리치지 못할 일이 생겼고, 광장으로 나가지 못하게 내 발목을 잡는 문제가 있었다. 그 기간 동안 이사를 치르느라 갭 투자자인 집주인들과 싸워야 했고, 독단적인 대안학교 교장과도 싸워야 했다. 광장에 나가진 못했지만 집회가 있는 날이면 마음으로 간절한 촛불을 밝히며 광장에 나가 있는 이들과 같은 마음이었다. 촛불 집회가 있던 기간은 내 삶의 곳곳에 쌓여 있던 불합리와 갈등하며 고민할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었다. 같은 기간에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으로 힘들어진 피해자들과 그녀들을 돕기 위한 동료 여성문인들도 거의 광화문에 나가지 못했던 것으로 안다. 성폭력 가해를 했던 남성 문인들 중 몇몇은 자신들도 ‘민주시민’이라며 광장에 나가 촛불을 밝히던 것을 SNS로 볼 때면 이중, 삼중으로 괴로웠다.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파행적으로 학교를 운영하던 교장 역시, 자신도 민주시민인 양 촛불기간 동안 ‘박근혜 때문에 나의 가을을 잃어버렸다’는 말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모두가 우리 삶의 적폐였는데, 자신의 적폐는 모르고 이 사회에서 ‘작은 권력’을 가진 이들이 먼저 나서서 ‘민주주의’를 말할 때, 이상한 괴리감에 쓴 웃음이 나오곤 했다. 왜 부끄러움은 나처럼 작고 힘없는 자들의 몫인지. 광장에 나가 민주시민으로서의 목소리를 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것조차 어려웠던 수많은 ‘샤이 촛불’도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촛불집회는 87년 민주항쟁 이후 최대의 시민혁명이었다.

이번 대선은 촛불집회로 이뤄놓은 시민들의 명예혁명이 결실을 보는 절호의 기회이다. 최선을 다했던 대선 후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누가 되든 국민들은 믿고 지지할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못한다면 바로 촛불의 힘으로 다시 끌어내릴 수도 있다. 한번 해봤기 때문에 또 하면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때는 나 같은 ‘샤이 촛불’도 총출동할 것이니까.

글=유형진(시인), 삽화=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