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 겸 연출가 오세혁은 지난해부터 자신이 관여한 작품의 수를 세는 것을 포기했다. 그가 대본을 직접 쓰거나 연출한 작품이 초연·재연 포함해 10편이 넘는 상황에서 각색과 윤색까지 합치면 20편 안팎까지 늘어나기 때문이다.
올해도 뮤지컬 ‘밀사’ 대본,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까라마조프-대심문관’ 연출, 연극 ‘보도지침’ 대본 및 연출, 연극 ‘지상 최후의 농담’ 대본, 연극 ‘라빠르망’(연출 고선웅) 각색 등 일일이 세기 어렵다. 그가 상임작가로 있는 극단 걸판은 그가 쓰고 연출한 ‘늙은 소년들의 왕국’ 등으로 올해 일본과 중국의 초청을 받은 상태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그의 활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는 “걸판을 처음 만들었을 때의 꿈이 공연만으로 먹고사는 것이었다. 지금 내게 주어진 많은 기회에 감사하는 만큼 더 열심히 하게 된다”면서 “지난해와 올해는 외부 작품을 많이 하고 있지만 내 작업의 원천은 걸판이다. 궁극적으로 걸판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지금은 민간 프로덕션부터 극장까지 다양한 방식의 제작을 경험하고 배우고 싶다”고 피력했다.
걸판은 그가 2005년 배우 겸 작가 최현미 등 한양대 안산캠퍼스 풍물패 동문들과 만든 극단이다. 노동극과 마당극을 가지고 전국을 돌았다. 상근단원이 30명 정도인 지금은 연간 150회 안팎 공연한다. 그는 2011년 신문사 2곳의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되면서 주류 연극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기발한 소재와 유려한 대사, 따뜻한 웃음을 앞세운 ‘타고난 이야기꾼’인 그가 총아로 떠오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이윤택 선생님이 이끄는 극단 연희단거리패가 롤모델이다. 걸판도 이런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극장도 운영하고 싶다”면서 “연희단거리패의 작품을 보면 동서양, 고전과 현대 등을 아우르는 등 스펙트럼이 넓다. 재미와 의미를 모두 놓치지 않는다. 가장 대단한 것은 작품에 임하는 단원들의 기동성과 순발력”이라고 말했다.
연극 작업을 주로 해오던 그는 지난해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섬세한 연출을 선보여 호평받았다. 이후 그에게는 뮤지컬계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지난 1년간 ‘라흐마니노프’ ‘나무 위의 고래’'까라마조프-대심문관' 등 창작뮤지컬 4편의 연출을 맡았다. 그는 “뮤지컬에 관심은 늘 있었지만 2013년 동기들과 함께 공모전에 넣은 ‘홀연했던 사나이’가 떨어진 뒤엔 연극에 집중했다. 그런데 내가 백석 시인에 대해 쓴 글 덕분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연출을 우연히 맡게 된 이후 뮤지컬 작업이 급증했다”고 웃었다.
올 봄에는 본격적인 창작뮤지컬 대본도 처음으로 썼다. 대한제국 시절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됐던 특사들을 다룬 서울시뮤지컬단의 ‘밀사-숨겨진 뜻’(5월 19일∼6월 11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이 그것이다. 그는 “뮤지컬의 경우 음악의 힘 덕분에 시공간이나 상상력의 제약이 연극보다 덜하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답했다.
오는 10월 연출가 고선웅과 작업하는 ‘라빠르망’에 대해 그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는다. 각색 작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존경하는 선배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쉴 새 없이 배우고 흡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야말로 그의 최고 장점이다.
장지영 기자
[공연계 대세 연출가 2인-오세혁] “극단 걸판, 제 작업의 원천”
입력 2017-05-08 00:00 수정 2017-05-08 1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