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와 피라미드의 나라? 이집트, 현대미술도 있어요!

입력 2017-05-08 00:00
케말 유시프, 귀족, 1940년대, 나무판에 유채, 샤르자 미술재단 소장(왼쪽 사진). 라팁 싯디크, ‘어머니들-평화의 행진’, 1940년대 초, 캔버스에 유채, 카이로이집트근대미술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집트는 미라와 피라미드의 나라다. 적어도 우리에게 각인된 이미지는 그렇다. 그런 편견을 깨는 전시가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전이다.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이집트 현대미술 전시이다.

샤르자미술재단, 이집트 문화부, 카이로아메리칸대학의 협력으로 열린 이번 전시는 166점 작품 가운데 상당수가 ‘국보급’이다. 이런 이유로 예정보다 보름 늦춰 개막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은 “이번 전시는 근대 미술이 서구 중심으로 해석돼 온 흐름에 반기를 드는 것으로, 비서구지역의 근대 미술을 조명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고 밝혔다.

초현실주의는 유럽에서 1차 세계대전 이후 이성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며 나타난 미술사조로, 무의식에 기반을 둔 미술운동이다. 1924년 프랑스 시인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을 계기로 퍼져나간다. 한국에선 뿌리를 내리지 못했지만 이집트는 프랑스 유학파를 중심으로 그 세례를 받았다. 예술과자유그룹(1938∼1945), 현대미술그룹(1946∼1965) 등 그룹 활동을 중심으로 그 맥을 이어갔다.

‘초현실주의’라는 우산 아래 이어진 운동들이지만 차이가 있다. 영국 식민지에서 갓 벗어난 시기인 예술과자유그룹의 활동때는 반제국주의 혹은 체제 비판적인 경향이 뚜렷하다. 오히려 낫세르 집권 이후 현대미술그룹의 활동이 우리가 생각하는 초현실주의에 가깝다.

먼저 예술과자유그룹 시기. 카밀 알텔미사니의 ‘무제’(1941)는 야수파처럼 검고 굵은 테두리 선으로 여인의 누드를 그렸는데, 무릎에 커다란 못이 꽂혀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 하는 표정이다. 식민지 시절 사회상을 매춘부로 표현한 것이다. 영국군이 이집트 양민을 학살한 ‘딘샤와이 학살 사건’(1950년대)을 그린 인지 아플라툰의 그림 등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담은 그림들에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현대미술그룹은 이집트 전통 신화와 우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이집트에서 귀족의 색으로 불렸던 ‘녹색’이 많이 쓰이고 고대 미술의 특성인 ‘측면 얼굴’이 많이 사용된다. 케말 유시프의 ‘귀족’은 이런 경향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낫세르 독재가 심화되면서 체제 찬양적인 그림도 등장한다. 압둘하디 알자제르가 거대한 독수리 날개 아래 도열한 사람들을 그린 ‘평화’(1965)는 낫세르의 ‘범아랍주의’를 노골적으로 찬양한다.

한국에서도 1970년대 여러 화가들이 박정희정권의 산업화 등 치적을 찬양하는 민족기록화를 그렸다. 비서구의 근대화라는 측면에서 이집트 미술은 한국 미술과 여러 모로 오버랩된다. 7월 30일까지. 2000원(덕수궁 입장료 1000원 별도).

손영옥 선임기자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