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처럼 예뻐질래요”… ‘어덜키즈’ 문화 확산 논란

입력 2017-05-06 05:00

일곱 살 딸을 둔 한모(35·여)씨는 어린이날을 맞아 딸을 위해 인터넷 쇼핑몰에서 ‘어린이 화장품 세트’를 주문했다. 한씨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이 한 달 전 화장품을 사달라고 조르는 통에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그러나 딸 친구들이 매니큐어와 화장품을 바르는 것을 보고 고민 끝에 사주기로 결정했다. 한씨는 “어린이 화장품의 모양과 가격대가 어른 화장품과 비슷해 놀랐다”고 말했다.

아이가 어른처럼 화장을 하고, 성숙한 옷을 입는 ‘어덜키즈’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어덜키즈(adulkids)는 어덜트(어른·adult)와 키즈(아이·kids)의 합성어로 어른 같은 아이를 뜻하는 신조어다. 어린이용 화장품 등 어덜키즈 제품의 안전성 우려와 함께 어덜키즈 문화가 아이들에게 ‘어른스러운’ 모습이 더 예쁘다는 왜곡된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어덜키즈 문화는 이미 젊은 부모와 어린이들 사이에선 대세다. 포털사이트에 ‘어린이 화장품’을 검색하면 1만원대부터 8만원대까지 2만여건의 제품이 나온다. 상품 구매 페이지엔 엄마들의 후기 글이 넘쳐난다. 어린이날을 맞아 이벤트 중인 한 유아 화장품 사이트의 매니큐어 상품 후기엔 “네 살 딸아이가 요즘 ‘여자 여자’해지더니 제 것을 바르고 싶다고 해서 친구 추천으로 구입했다”는 댓글이 달려 있다.

어린이 화장품 제품 시장은 급성장 중이다. 옥션에 따르면 올 1월 1일부터 지난달 9일까지 어린이 선쿠션, 매니큐어, 립밤 등 어덜키즈 상품 판매량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최대 11배 늘었다. 남자 아이를 위한 키즈 왁스도 하루에 1000여개 팔릴 정도로 인기다.

어덜키즈 시장 성장세만큼이나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선 어린이를 위한 ‘안전한 화장품’ 가이드라인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황은주 더3.0피부과 원장은 “아이들은 피부가 굉장히 약해 여러 화학물질에 예민한 경우가 많다”면서 “특히 색조 화장품이 제대로 세안되지 않은 채 모공이나 눈썹을 통해 흡수되면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설페이트, 파라벤 등 물질은 특히 호르몬 교란을 불러와 유방암, 자궁근염 등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어덜키즈 상품 광고 이미지가 어린이들에게 잘못된 미(美) 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동복 쇼핑몰 광고를 대행하는 이슬기(25·여)씨는 “‘볼터치 화장’을 지나치게 강조한 유아복 쇼핑몰 어린이 모델들의 표정이나 포즈가 흡사 ‘롤리타’ 콘셉트 화보를 떠오르게 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활기차고 자유로운 모습을 한 해외 아동복 광고 속 어린이 모습과 차이가 심하다”고 덧붙였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아보단 여아 이미지의 왜곡이 심하다”면서 “이제 성인 여성뿐 아니라 여아도 나약하고 수동적인 이미지로 재현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러한 모습이 어렸을 때부터 ‘이상화된 이미지’로 받아들여진다면 여성에 대한 ‘왜곡된 고정관념’이 재생산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어덜키즈가 잠시 스쳐가는 유행일 뿐 지나친 우려는 과도하다는 평가도 있다. 어덜키즈 소품이나 패션은 어린이에게 하나의 ‘놀이’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며 안전한 성분의 제품을 사용하면 별 문제될 게 없다는 의견이다. 최우석 옥션 영업본부 팀장은 “어린이 화장품 중에서도 수용성 매니큐어, 천연색소 립스틱 등 안전성을 강조한 제품들이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윤성민 신재희 기자 woody@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