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양영모] 모병제 주장, 타당하지 않다

입력 2017-05-05 17:22

병역은 한 나라의 국방력 구성에 필요한 병력을 충원하기 위한 국민의 부담을 말한다. 병역제도는 병력충원 방법에 따라 크게 의무병제와 지원병제로 구분된다. 의무병제는 개인 의사와 무관하게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제도로서 징병제, 동원제 등이 있다. 지원병제는 개인 의사에 따라 병역을 이행하는 제도로서 모병제, 용병제, 직업군인제 등이 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대부분의 근대국가는 의무병제 군대를 채택했다. 냉전체제 해체 후 유럽 여러 나라는 모병제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으나 이 역시 병역은 자신이 속한 국가에 헌신한다는 숭고한 이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49년 8월 ‘모든 국민은 국토방위의 의무를 진다’는 헌법에 입각해 징병제가 시행됐다. 이듬해 발발한 6·25전쟁 시 19세 이상 모든 남자가 군대에 징집됐다. 62만1500여명의 군인이 전사, 부상 혹은 실종, 포로가 되었다. 이때 국민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애국·희생정신의 기틀이 형성됐다. 오늘날 대한민국 남성은 18세에 병역준비역에 편입되고, 군 복무를 마친 뒤 8년까지 예비역으로 병역을 이행해야 한다.

대선 정국에서 일부 정치인들이 모병제 혹은 징병, 모병제를 혼용하자고 주장한다. 병역 가용 자원이 줄어드는 2023년쯤 군 규모를 30만명으로 축소하고 이 중 18만명을 ‘연봉 2400만원, 복무기간 3년의 병’으로 모집하자는 주장, 병 의무복무를 10개월 하고 이후 ‘연봉 3000만원 복무기간 3년의 지원병’을 모집하자는 주장, 첨단 전력을 보강해 의무복무를 12개월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문병사’ 모집 주장도 있다. 2022년쯤 병 30만명 중 15만명을 ‘하사 월 급여 수준 178만원에 4년 복무 전문병사’를 모집하고 징집된 15만명의 복무기간을 12개월로 단축하면 경제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모병제 주장은 ‘3∼4년 군에 근무하여 1억원을 벌 수 있는 병’으로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주장이다.

유럽 여러 나라가 모병제로 전환하는 데는 안보 위협이 잠재적 분쟁 수준 이하로 낮아졌거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이상으로 모병제 비용 부담이 가능하거나, 군 규모가 병역 가용 자원의 3분의 1 미만으로 소규모로 징집병 비율이 전체 병의 30% 이하로 전문화되어 있는 군대를 유지해 온 경우에 가능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건이 전혀 맞지 않는다. 북한의 다양한 도발과 위협이 계속되고 있다. 통일 과정, 통일 이후 주변국 정세를 고려해 최소 52만2000명 규모의 군사력 유지가 필수적임은 노무현정부 국방개혁 당시에도 판단하고 있었다. 또 입대를 앞둔 당사자와 부모 입장에서 돈 있는 사람은 안 가도 되는 군에 지원하겠는가. 3∼4년 복무하고 1억원을 벌 수 있다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 현재 월 120만∼180만원을 받는 유급지원병도 제대로 획득이 안 돼 규모를 축소했다. 대만에서도 애초 계획보다 돈을 더 많이 주었지만 2013년 2만8000명 모집에 8000명이 지원했다.

모병제는 우리 안보 현실에 맞지 않는 인기영합적 주장이다. 병역제도는 국가안보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문제로 함부로 주장하는 건 무책임한 처사다. 독일도 통일 20년이 경과된 뒤에야 징병제를 유예했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군 복무로 경제적 손실이 크지만 한반도에서 전쟁 재발을 방지하고 국가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음은 확실하다. 그것을 돈으로 따질 수 있는가.

양영모(서울과학기술대 교수·안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