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은의 씨네-레마] 상처로 지은 집

입력 2017-05-06 00:00
어느 날 맥(샘 워싱턴)은 하나님의 초대장을 받는다. 초대받은 장소는 절망적인 기억으로 가득 찬 곳, 오두막이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학대받은 맥은 집에서 뛰쳐나와 혼자 살다가 신실한 신앙을 가진 아내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일궜다. 하지만 가족 캠핑을 갔다가 이 오두막에서 흉악한 연쇄살인범에게 막내 딸 미시를 잃게 된다.

이후 몇 년이 흘렀다. 인생에 들이닥친 거대한 슬픔은 그의 내면을 황폐하게 만들었고, 가족 간 관계도 어려움을 겪는다. 오두막으로의 초대장을 놓고 맥은 다시 고뇌에 잠긴다. ‘연쇄살인범이 보낸 것일까.’ ‘누군가의 잔인한 장난일까.’ ‘아니면 정말 하나님이 보낸 것일까.’

누구에게나 내면의 상처는 있다. 맥에게 이 오두막은 짙은 트라우마로 가득한 장소다. 두려움과 거부감에도 그는 알 수 없는 강한 이끌림을 따라 비극의 장소로 여행을 떠난다. 막상 도착한 그곳은 자신의 기억과 달리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아늑한 공간이었다. 거기서 세 사람이 그를 반긴다. 스스로를 ‘엘 루시아’라고 소개한 흑인 여성 ‘파파’, 신비한 바람과 같은 정원지기 동양 여성 ‘사라 유’, 그리고 목공 옷을 입고 있는 중동 청년 ‘예수.’ 말하자면 성부, 성령, 성자 삼위일체다.

윌리엄 폴 영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영화 ‘오두막’은 깊은 상실감과 상처로 방황하는 한 남자의 놀라운 회복을 담고 있다. ‘오두막’은 영화 속 인물의 상황에 맞게 삼위일체의 모습을 친근하고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제시한다. 예술은 설명할 길이 없는 것들을 언어와 소리, 이미지로 창조해 표현하는 행위다. 시각 예술은 가시적인 것뿐만 아니라 비가시적인 것들을 형상화하기도 한다. 영화 속 성부의 모습은 맥이 평소 마음속으로 상상해 오던 긴 수염을 기른 백인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구타당한 그에게 따뜻한 애플파이를 건네준 이웃집 흑인 여성을 성부의 모습으로 형상화한다.

오두막에서 맥은 성부 성령 성자의 도움으로 깊은 내면의 상처를 하나씩 치유해 간다. 가장 중요한 장면은 그가 자신의 상처와 대면하고 신이 아닌 인간의 자리에서 살인자를 용서하는 것이다. 인류는 선악과를 먹은 이래 선악을 판단하고 신의 자리에서 심판관 역할을 하려는 죄를 지어왔다. 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런 자신의 죄를 교정하고 겸손의 자리를 찾게 된다. 딸을 잃은 사람에게 어느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진정한 용서’를 스스로 찾아나서는 대목에서 영화는 기독교의 진정한 가치, 즉 용서를 설파한다. 맥의 강한 반발과 분노 앞에서도 삼위일체는 기나긴 인내의 시간과 섬세한 배려, 지혜의 언어로 그를 맞이한다. 결국 상처의 공간은 회복이 일어나는 기적의 장소가 된다.

상처가 상처를 낳고, 갈등이 더 큰 갈등을 낳는 죄악의 세상에서 갈등과 반목의 고리를 끊고 화해와 용서, 평화의 역할을 하는 게 주님이 계획하신 기독교인의 역할이다. 주님이 지라고 했고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 멘 십자가다. 그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은 우리가 먼저 주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고 치유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 안의 십자가, 그보다 더 큰 보물은 없다.

임세은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