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에 처박힌 내 영혼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싶었습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강용주는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서관 제501호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경찰에 자신의 행적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게 됐다. 그는 보안관찰 대상이다. 보안관찰제도는 법무부 장관이 지정한 사람은 3개월마다 경찰에 자신이 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다녔는지 신고하도록 한 제도다. 국가보안법이나 형법상 내란죄, 군형법상 반란죄로 형벌을 받은 이들이 대상이다. 성폭행범 등에게 부과되는 보호관찰제도와 달리 재판 없이 법무부 장관이 결정한다.
경찰에 신고하는 내용은 종교 및 가입한 단체, 직장의 소재지와 연락처, 어디를 누구와 어떻게 여행했는지를 비롯해 주요 활동사항, 다른 보안관찰 대상자와 전화나 온라인으로 연락했는지 여부와 내용, 기타 관할경찰서장이 지시한 사항이다. 강용주는 이를 거부했다. 이번이 세 번째 재판이다.
그가 보안관찰 대상이 된 사연은 이렇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고등학생으로 참여했다. 전남대 의예과에 들어가서도 학생운동을 했다. 85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남산 국가안전기획부에 끌려가 35일간 고문을 당했다.
“안기부 수사관들은 자신들이 미리 써놓은 자료를 저에게 던져주고 외우라 했고, 저는 시키는 대로 방송국에 나가 웃으며 그 자료대로 말했습니다. 그런 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폭력에 의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광주 시민을 학살한 정권의 개가 되어 주절거렸던 제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제 영혼을 다시 일으키고 싶었습니다.”
사상전향서를 쓰면 풀어준다고 했지만 그는 자신의 영혼에 다시 상처를 주는 행동을 거부했다. 98년 전향서가 준법서약서로 바뀌었다. 이것도 거부했다. 2003년 헌법재판소는 준법서약서 제도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출소 후 복학, 2008년 초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된 강용주는 자신과 같은 고문 피해자들을 치료하는 일을 해왔다. 2012년에는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의 치유를 위해 문을 연 광주트라우마센터의 초대 센터장도 맡았다.
국가는 여전히 그를 ‘보안관찰’하고 있다. 강용주는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군사반란 수괴로 무기징역 확정판결을 받은 전두환에게는 아무런 보안관찰 의무도 부과되지 않았는데, 왜 정당하게 맞서 싸운 저는 이 자리에서 재판까지 받게 하는 것입니까?”
국가인권위원회는 2002년 보안관찰 대상자를 조사해 인권침해 실태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시의원을 지낸 한 여성의 이야기다.
“경찰이 전화도 없이 내가 없는 집에 찾아와서 시부모님께 ‘당신 며느리가 보안관찰법에 규정되어 있는 출소신고를 하지 않고 있다. 만약 계속 출소신고를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라는 말을 해서 시부모님이 위협적으로 느끼셨다.”
인귄위는 보안관찰법을 폐지하거나 최소한 재판을 거쳐 대상을 지정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엔 인권위도 폐지를 권고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회는 보안관찰법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재판부에 요구했다.
3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그는 “국가는 나를 길들이려 하지만 나는 싸가지가 없어 길들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재판을 받으며 다시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지만 웬만해선 고통스럽지 않다고 했다. 목소리는 밝았다. 더 이상 권력이 그에게 상처를 주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김지방 사회부 차장 fattykim@kmib.co.kr
[세상만사-김지방] 강용주 이야기
입력 2017-05-04 1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