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영석] 설전 대통령을 바란다

입력 2017-05-04 18:54

#1. 지난 2월 16일 미국 백악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기자회견장. 그는 러시아 게이트를 보도한 5개 언론사를 거론하며 “언론 보도는 모두 가짜 뉴스다. 창피한 줄 알라”고 말했다. CNN 기자가 “우리 회사를 가짜 뉴스라고 했는데”라고 하자 “아주 심한 가짜 뉴스다”라고 면박을 줬다. BBC 기자가 “BBC는 공정하고 올바르다”고 하자 “맞다. CNN과 똑같다”고 했다. “나한테 우호적인 곳이 어디냐”며 질문을 가려 받기까지 했다.

#2. 2003년 3월 9일 ‘대통령과 전국 검사와의 대화’. 한 검사는 “취임 전 부산동부지청장에게 청탁 전화했지 않느냐”고 따졌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거죠”라고 맞받아쳤다. 또 다른 검사는 “토론의 달인인 대통령이 아마추어인 검사들을 말로써 제압하려 한다면 무의미하다”고 비판했다. 노 전 대통령은 “모욕감을 느끼지만 웃으며 넘어가자”고 했다.

두 대통령의 언론관에 대해선 부정적 평가가 우세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과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싸운다. 현재진행형이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2년차인 2004년 보수언론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임기 말엔 기자실 폐쇄까지 단행했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 중 국민 앞에 가장 많이 선 이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이다. 기자회견에다 언론사 인터뷰 등을 합쳐 각각 150차례다. 노 전 대통령은 고개를 숙여야 할 땐 잘못을 스스럼없이 인정했고, 논쟁 사안이면 자신의 입장을 적극 펼쳤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선 사전 질문자를 정하지 않은 자유질문 회견도 시도했다.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20차례, 박근혜 전 대통령 땐 최순실 게이트 전 5차례로 급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제와 함께 극단적인 불통의 숙제도 남겼다.

답은 명확하다. 차기 대통령은 한반도와 경제 위기를 풀 비전과 함께 소통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국민들이 대통령을 자주 볼 수 있어야 한다. 기자회견을 적극 활용해 볼 만하다. 기자회견은 국민을 상대로 직접 자신의 입장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설득의 장이다. 정례화가 우선이다. 매주 어렵다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춘추관을 방문해 브리핑하면 어떨까. 춘추관만 고집할 이유가 없다. 청와대 잔디밭에서 도시락 오찬회견을 하면 또 어떠한가.

다음은 형식이다. 자신의 말만 하는 기자회견은 박 전 대통령 시대와 함께 탄핵됐다. 즉석에서 기자가 묻고 대통령이 답해야 한다. 기자들의 돌발 질문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대통령이 모르면 담당 비서관을 배석시키면 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말처럼 대통령이 부처 국장급이 알아야 할 숫자까지 다 알 수는 없지 않은가. 기자들의 질문에 쩔쩔매는 대통령도 보고 싶다. 모든 것을 아는 척하는 대통령보다 모른다고 솔직히 고백하는 인간적인 모습에서 국민들은 매력을 더 느낄 것이다. 방향성이 다른 기자와는 과감히 설전(舌戰)을 벌이는 대통령을 기대한다.

일본으로 눈을 돌려보자. 일본 총리들은 출퇴근 시간 ‘부라사가리(매달리다)’ 취재에 응한다. 총리가 선 채로 10여분 동안 응하는 즉석 취재다.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부터다. 질문 내용에 제약이 없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공약대로 ‘광화문 청와대’ 시대가 열리면 시도해 봄 직하다. 이 참에 퇴근길 재래시장에 들러 시민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논쟁하는 대통령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설전 대통령을 위해선 기자들의 분발도 요구된다. 60년간 10명의 대통령을 취재했던 백악관 최장수 출입기자 헬렌 토머스는 생전에 말했다. “기자들이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왕이 될 수 있다.”

김영석 논설위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