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O 중 숨진 내 아들 잊지말라”… 日 ‘전쟁법’ 맞선 母情

입력 2017-05-04 05:00

3일 헌법 시행 70주년 기념일을 맞은 일본에선 전후 일본 사회의 근간이었던 ‘평화헌법(헌법 9조)’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점화되는 모습이다.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꿈꾸는 반성 없는 전범 국가의 극우 정치권은 헌법기념일에 맞춰 전후 헌법 질서를 뒤흔들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같은 날 일본 시민사회는 도쿄에서만 5만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헌법 수호와 안보, 전쟁법 폐지를 촉구했다.

이날 아사히신문은 일본의 유엔 캄보디아 평화유지활동(PKO)에 참여했다가 희생된 다카타 하루유키(사망 당시 33세·사진 오른쪽)씨의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평화헌법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기사를 마련했다.

일본 오카야마현 구라시키시에 거주 중인 다카타 사치코(84·왼쪽)씨는 아사히 기자에게 야구장갑을 보여주며 “아들이 캄보디아 현지에서 아이들과 야구할 때 쓰던 유품”이라고 입을 열었다.

하루유키는 캄보디아 내전이 휴전된 직후 PKO 민정경찰 요원으로 캄보디아 북서부에 파견돼 근무하던 중 1993년 5월 4일 크메르루주 반군에 피살됐다. 당시 그는 유엔 평화유지군의 경호를 받으며 차량으로 이동 중이었지만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반군의 기습을 받아 숨졌고, 그 외에도 일본인 요원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헌신적인 요원으로 정평이 났던 하루유키의 죽음은 당시 캄보디아 현지에도 큰 충격을 불러왔지만, 일본에서도 커다란 후폭풍을 몰고 왔다. 1992년 6월 일본 PKO협력법이 시행된 이래 종전 이후 분쟁지역에서 군경의 임무로 파견된 일본인이 희생된 최악의 사례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파견 근거가 됐던 PKO협력법 자체가 평화헌법에 대한 위반이란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24년 전 이역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하루유키의 유품 속에서 찾은 부치지 못한 편지를 꺼냈다. 그는 편지에 “밤낮을 가리지 않는 총소리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전쟁터 같이 가혹한 이곳에서 빨리 철수하면 목숨은 건질 텐데”라고 적었다.

일본에서 파견 지역의 실질적인 치안 상황을 어떻게 알 수 있겠냐고 반문한 사치코씨는 아들의 캄보디아 근무를 칭송한 감사장과 표창장들을 가리키며 “고맙지만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개죽음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헌법 9조는 무엇을 위해 있는지 생각해 보라. 그리고 내 아들을 잊지 말아 달라”고 말을 맺었다.

이른바 ‘평화헌법’ 조항으로 불리는 헌법 9조는 일본이 전쟁과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하며 군대를 보유하지 않고 교전권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하루유키가 휩쓸렸던 교전 상황에 일본인 요원들이 가 있는 것 자체가 헌법적 모순이란 견해가 많았다.

아들을 먼저 보낸 어머니의 회한에도 불구하고 재무장을 위한 헌법 개정에 몰두 중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에 맞춰 개정 헌법 시행을 밀어붙일 개헌 구상을 제시했다. 아베 총리는 3일 요미우리신문 인터뷰를 통해 “자위대 합헌화가 내 시대의 사명”이라며 “헌법 9조에 자위대 관련 내용을 명시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간의 집요한 개정 시도에 반발이 컸던 헌법 9조 1항과 2항을 그대로 놔둔 채 자위대 관련 기술을 은근슬쩍 끼워 넣겠다는 극우 총리의 ‘꼼수’가 보다 구체적으로 노골화된 모양새다.

한술 더 떠 집권 자민당이 앞서 내놓은 개헌 초안에는 헌법 9조 1항의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에서 ‘사용하지 않는다’로 고쳤다. 또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명시한 2항은 ‘전항(1항)의 규정은 자위권의 발동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바꿨다. 심지어 ‘국방군’을 보유한다고 명시하는 내용도 새로 추가됐다.

1954년 창설된 자위대가 최근엔 사실상 ‘군대’ 흉내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헌법학자 상당수와 시민 사회는 자위대의 존재 자체가 일본 헌법에 위배된다고 지적한다. 이를 두고도 아베는 “자위대 임무 수행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지만 헌법학자들은 위헌이라고 말하고 있다”면서 “북한 정세가 긴박해 안보환경이 엄중해진 상황에서 ‘위헌일지도 모르겠지만, 무슨 일 있으면 생명은 구해 달라’는 식의 자세는 무책임하다”고 억지 주장을 폈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