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의 빛’ 잃었다고 ‘하늘의 빛’ 못보랴!

입력 2017-05-04 00:01 수정 2017-05-07 17:25
새빛맹인선교회 재활원 시각장애인들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방배중앙로 선교회 예배당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예배당 전면에 “우리가 실명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려함이라”(요 9:3)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새빛맹인선교회와 재활원 전경. 아래 사진은 시각장애인들이 숙소에서 서로의 어깨를 줄지어 안마해 주는 모습.
안요한 목사
박자가 맞지 않을 때도 있었다. 가끔 ‘삑’ 소리도 났다. 하지만 연주하는 단원은 물론 듣는 자원봉사자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했다.

교통사고를 당한 뒤 당뇨합병증 등으로 시력을 잃게 된 박종근(76)씨. 12년 전 이곳을 찾고 나서야 희망을 되찾았다. 박씨는 이곳 재활원에서 숙식하며 각종 재활훈련을 받았다. “아내와 자식들이 있어요. 하지만 제가 스스로 집을 나왔습니다. 가족들에게 짐이 되기 싫었거든요. 눈이 이렇게 된 건 몸관리를 제대로 안 한 탓도 있고요. 얼마 전 가족이 저를 찾아온다고 연락해왔더군요.”

서른아홉 젊은 나이에 녹내장으로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이규중(가명·57)씨는 믿음이 없었다. 청각에도 이상이 와 절망 가운데 허송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3년 전 이 곳에서 첫 예배를 드리는 날 눈물을 펑펑 쏟았다. 수 십 년 피우던 담배도 단 사흘 만에 끊었다. “그때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됐죠. 더 열심히 살아보려 합니다.” 삶이 긍정적으로 바뀌자 신앙도 자라나 점점 성숙되는 걸 실감한다고 했다.

성인 이후 실명한 중도 시각장애인 김경원(가명·36)씨에게도 선교회는 용기를 불어넣어준 곳이다. 늘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자원봉사자와 직원들로 인해 삶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갖게 됐다고 한다. 선천성 저시력으로 태어난 김경희(가명·48)씨는 이곳에서 단소를 불며 새로운 자신을 발견했다. 악기를 연주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 말이다.

새빛맹인선교회는 시각장애인들의 재활과 신앙회복을 위해 설립한 복지단체로, 대표인 안요한(78·사진)목사가 40년째 헌신하고 있다.

안 목사 인생은 한편의 드라마다. 시골교회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젊은 시절 그는 하나님을 부인했다. 미국 국방성 초청으로 한국어 교관에 임명됐다. 그런데 출국을 앞두고 원인 모를 안질에 걸렸고, 갑자기 시력이 떨어지더니 서른일곱 살 때 시각장애인이 됐다. 극심한 절망에 빠졌고 몇 번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그러나 자살시도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 1:5∼9) 비둘기 같은 평화가 그의 가슴을 감싸 안았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평안이었다. 서울역 거리를 전전하며 노숙자 생활을 하던 그는 우여곡절 끝에 성직자가 됐다.

현재 이곳에서 생활하는 시각장애인은 28명. 2006년 설립한 경기도 용인 새빛요한의집에서 생활하는 시각장애인 어르신까지 합하면 60명이 넘는다. 중도 시각장애인에게 필요한 사회적응 훈련은 물론, 점자교육과 안마 및 악기교육 등 재활에 집중한다. 안 목사는 단순한 복지차원을 넘어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데도 온 힘을 쏟고 있다. 그동안 17명의 시각장애인 목회자를 배출한 것도 이런 노력 덕분이다.

최근엔 해외 시각장애인 영혼구원에도 나섰다. 네팔과 인도네시아, 스리랑카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시각장애인 재활센터와 교회를 설립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몽골과 중국, 인도, 케냐, 볼리비아 등 10여국에 선교비를 전달한다.

“시각장애인이 질병 때문에 삶과 신앙을 포기하지 않도록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기도와 관심이 필요합니다. 장애인 사역과 사역자들이 더 많아져 맹인교회가 없어지는 날이 속히 오길 바랍니다.”

안 목사의 목소리에는 동요하지 않는 신앙의 평안이 묻어났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