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37·여)는 두 아이를 둔 미혼모다. 이혼한 부모에게 상처받으며 자랐다. 가족은 의지할 수 없고 어려운 존재라고 생각해온 그다. 잘못된 사랑에도 빨리 나만의 가정을 꾸리고 싶었지만 남은 건 아이 하나뿐이었다.
나이 서른에 첫아이를 임신한 A씨는 어디서 지원을 받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타인의 시선을 피해 홀로 집에 머무르다 보니 벌어둔 돈은 다 쓰고 말았다. 만삭의 지친 몸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일주일 넘게 잠들지 못하기도 했다.
미혼모 시설에서 아기를 낳았다. 아기는 자주 아팠다. 새로운 삶을 위해 공부를 하려 했지만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결국 새로운 남자와 결혼을 선택했다. 둘째를 낳았지만 우울증은 가시지 않았다. 극도의 무력감에 빠졌다. 아이를 혼자 놀게 내버려 두고 방안에만 머무르기도 했다.
물끄러미 아이를 지켜보던 어느 순간 자신에게 질문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그때 미혼모 자조모임인 정신이건강한모임(정건모)을 찾았다. 미혼모 친구들과의 대화로 아이를 보듬어주고 키우는 방법을 찾아갔다.
그는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아이를 한 번이라도 더 안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육아를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술집이나 노래방을 전전하는 이도 있지만 아이를 위해 더 나은 내가 되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3일 말했다. 그는 우울증을 이겨내고 지난해 자격증을 따 스스로 벌이를 시작했다.
낙태나 입양을 거부하고 아이를 기르기로 선택하는 미혼모가 늘고 있지만 이들을 돕는 손길은 턱없이 부족하다.
여성가족부의 한부모가족 실태 조사에 따르면 양육을 선택하는 미혼모 비율은 1991년 6.5%, 2001년 11%, 2011년 34.8%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는 미혼모 수가 2013년 기준 2만3000여명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미혼모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서로 돕는 모임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정건모 등 저소득 양육미혼모 자조모임에 나오는 미혼모 142명, 자녀 87명 등을 지원하는 정도다.
B씨(36·여)는 2010년 아이를 낳은 미혼모다. 가족의 반대가 심해 잠시 집을 나와 미혼모를 위한 시설에서 아이를 낳았다. 따가운 시선에 힘이 들 때마다 미혼모 자조모임이 버팀목이 됐다. 아이에게 짐이 될 수 없겠다는 생각에 2011년 공무원 공부를 시작했다.
2015년 1월 공무원으로 임용되기까지 4년을 육아와 공부를 병행하며 버텼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자조모임 상담가인 장보연 개신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학 교수가 격려했다.
“공부를 하면 선택의 폭이 넓어집니다. 엄마 스스로 경험한 만큼 아이에게 삶의 교훈을 전해줄 수 있어요.”
B씨는 “경제적 지원만으로는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데 그쳤을 것”이라며 “정서적 상담을 받는 게 나뿐 아니라 아이에게도 좋은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2011년 정건모를 만들어 30명 넘는 미혼모의 심리 상담을 해왔다. 그 역시도 미혼모의 딸로 입양됐다는 사실을 3년 전 아버지의 임종 때야 들었다. 그는 “미혼모는 생명의 소중함을 알기에 사회적으로 안 좋은 시선을 감내하며 용기를 낸 책임감 강한 엄마들”이라며 “사회의 따가운 시선이나 어려운 상황에 쓰러지지 않고 건강한 엄마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상담과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
“미혼모의 고통, 자조모임으로 이겨냈어요”
입력 2017-05-04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