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들 ‘韓·美 FTA 재협상 대책’ 원론만 되풀이

입력 2017-05-04 05:02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 가시화되면서 반등의 기미를 보이는 우리 경제에 다시 폭풍우가 몰려오는 분위기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후보들의 처방은 말 그대로 ‘뜬구름 잡기식’이다. 산업계와 통상 전문가들은 치밀한 통상정책과 FTA 재협상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청사진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3일 대선 주요 후보들의 통상정책 공약과 발언을 보면 대체로 한·미 FTA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미국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선언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 1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서로 이익을 주고받기 때문에 (미국이 한·미 FTA를) 폐기는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우리는 국익을 지켜내고 이익 균형을 맞추는 노력을 하면 된다”고 밝혔다. 문 후보는 정부의 통상업무를 현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분리해 외교부와 다시 합쳐야 한다는 입장이기도 하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지난달 30일 경기도 동두천 유세에서 “한·미 FTA로 우리가 250억 달러 규모의 흑자를 보고 있다”며 “그걸 해소하기 위해 우리가 중동에서 수입하는 가스를 미국의 셰일가스로 대체해주면 협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지난달 28일 TV토론에서 “한·미 FTA는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됐다는 증거가 많다”며 “(재협상을 할 경우) 설득력 있는 논리들을 준비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수출업계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사드 비용 부담 문제 등 다른 자극적인 현안에 밀려 대선 후보들이 한·미 FTA 재협상에 대해선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미 FTA 재협상으로 관세가 다시 조정된다면 2021년까지만 최대 170억 달러(약 19조4000억원) 수준의 수출 손실이 예상된다. 다만 이 관계자는 “후보들이 구체적인 협상카드를 감추는 것일 수는 있다”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한·미 FTA 재협상이 차기 정부 출범 이후 실제로 개시됐을 때 이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전략이 나올지 의문을 제기한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FTA에 대한 대선 공약들이 원론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한·미 FTA가 재협상 국면에 들어간다면 차기 정부에서 벌어질 일이기 때문에 후보들은 더 철저하고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세계 각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달라진 국제정세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 가운데 중국과 일본은 미국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 순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중국은 미국에 통상협력 계획을 제시했고, 일본은 미국에 대한 투자 및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코트라 관계자는 “우리도 중국·일본처럼 적극적으로 미국에 통상·경제협력 패키지를 제시해 보호무역주의를 우회할 수 있는 대처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세종=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일러스트=전진이 기자,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