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정유라(21)씨 등의 승마 해외전지훈련 자금 지원을 논의할 때 최순실(61·구속 기소)씨는 예산 과다를 우려했지만, 정작 삼성이 “마필 가격을 하향할 필요가 없다”고 한 정황이 나타났다. 최씨와 삼성의 중간에서 의견을 전달하던 박원오(65)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가 작성한 여러 문건에서 드러난 흔적이다. 정씨 지원이 “강요에 따른 피해”라는 삼성의 주장과는 차이가 있다. 정씨 지원이 뇌물이냐, 강요냐가 쟁점인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의 형사재판 과정에서 이 문건들은 논란이 될 전망이다.
3일 박씨가 한국시간 2015년 8월 11일 새벽 2시10분 최종 수정한 아래한글 파일인 ‘말1’ 문서를 보면 최씨는 “세컨드말(두 번째 말)의 경우 장애물은 가격을 반으로” “너무 가격이 높아서 나중에 말이 나오고 성적도 안 나올 경우 문제가 생긴다”는 의견을 박씨에게 전달했다. 박씨가 최씨의 이메일(hongmee15@gmail.com)로 보낸 ‘2018년 아시안게임 및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하는 승마 해외전지훈련’이라는 제하 문서를 최씨가 수정해 돌려보낸 내용이다.
애초 박씨는 최씨에게 이 문서를 보내며 “주전마는 100만 유로(13억원), 세컨드마는 70만 유로(9억원)”라고 적었다. 최씨는 이에 대해 장애물 경기에 쓸 세컨드마를 5억원으로 줄이고, 1억7000만원으로 책정된 선수단 차량 가격도 낮추라고 주문했다.
이때 삼성은 “너무 가격이 높아 문제가 생긴다”는 최씨의 우려와 다른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박씨가 하루 만인 한국시간 2015년 8월 12일 새벽 5시31분 다시 업데이트한 ‘말3’ 문서에는 “삼성 측에서도 마필 가격을 이미 조사하였으며 1인당 최하 100만 유로짜리 마필이어야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고 파악하고 있는 상황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박씨는 “그러므로 마필 가격은 더 이상 하향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입니다”라고도 덧붙였다.
삼성은 특히 정씨 지원에 확고한 태도를 유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는 “또한 삼성 측에서는 처음 구입하는 마장마술 마필 2두에 대해서는 100만(유로)이 훨씬 넘더라도 선수 본인과 매치가 된다면 구입하겠다는 말씀을 사장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문서에 적었다. 이때 ‘처음 구입하는 마장마술 마필 2두’란 당시 독일에 있던 유일한 마장마술 선수인 정씨가 탈 말들이었다. 특검은 여기서의 ‘사장’은 박상진(64)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이라 파악한다.
박씨는 “유연이(정유라씨의 개명 전 이름) 마필을 제외하고는 100만 유로 정도에서 1인당 2두를 주전마와 세컨드마를 구입하는 방향으로 예산을 수립하였습니다”라고도 썼다. 실제 삼성은 지난해 1월 27일 정씨의 승마 코치인 안드레아스 헬그스트란드로부터 200만 유로를 지불하고 비타나V, 라우징1233 2마리를 사들였다. 정씨에 비해 나머지 선수들의 지원은 절반 수준으로 계획됐던 셈이다.
박씨는 최씨에게 “삼성은 기본적으로 250억원에서 300억원 선까지 이 프로젝트에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알고 있다”고도 알렸다. 박씨가 갱신해온 ‘말1’ ‘말3’ ‘말4’ ‘말5’ ‘말 최종회신’ 등의 문서는 특검도 이미 확보했다. 특검은 박씨가 최씨와 이메일로 이 문서를 주고받은 정황을 확인한 상태다. 특검은 최씨와 삼성의 의견 제시로 조금씩 달라지는 대동소이한 이 문서들이 이 부회장 공판에서 의미 있는 자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단독] 최순실 “말값 너무 높은데 성적 안 나오면”… 삼성 “100만유로 훨씬 넘어도 OK”
입력 2017-05-04 05:00 수정 2017-05-04 1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