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전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르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80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3.8%에 불과했지만 이르면 올해 안에 이 비중이 14%를 넘는 고령사회가 될 전망이다. 생활수준 향상과 의학 발달 등으로 이제 은퇴 이후의 삶은 황혼이 아니라 ‘제2의 성인기’(중년전환기+중년안정기)로 봐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삶을 즐기려는 어르신들의 욕구가 높아져 실버스포츠가 각광받고 있다. 국민일보는 대한체육회와 공동으로 어르신들의 생활체육 현황을 소개하고 활성화 방안을 제시하는 실버스포츠 시리즈를 5차례 연재한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광진구 뚝섬 한강공원 잔디밭. 30여명의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며 골프채를 휘두르고 있었다. “나이스 샷!” 곳곳에서 탄성이 터졌다. 웃음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이들이 하고 있는 것은 젊은 사람들에겐 생소한 ‘그라운드골프’로 골프와 게이트볼의 특징을 합친 운동이다.
이날 라운딩에 나선 30여명의 동호인들 중 눈에 확 띄는 인물이 있었다.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 입은 신현택(80) 대한노인회광진구지회장이었다. 그는 활기찬 걸음걸이로 홀을 돌고 있었다. 요즘 그를 본 지인들은 다 놀란다고 했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1995년 언론사에서 퇴직한 직후 뇌출혈로 쓰러졌어. 한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졌지. 12년 전에 그라운드골프를 시작했는데, 당시 왼쪽 다리를 질질 끌며 경기를 했어. 이젠 그라운드골프 덕분에 건강을 되찾아 펄펄 날아다니고 있지.”
곁에 있던 박정자(75) 광진구그라운드골프클럽 부회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우리 같은 노인들에게 이만한 운동이 없어요. 회원 대부분이 4시간 동안 1번 홀부터 8번 홀까지 6라운드를 돌죠. 예전에 스포츠댄스, 고전무용을 했는데 요즘은 다 끊고 그라운드골프만 해요.”
박 부회장은 2008년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심한 우울증에 걸렸다고 했다. 우울증 치료를 위해 뚝섬 한강공원을 걷던 박 부회장의 눈에 그라운드골프가 들어왔다. 골프채를 빌려 처음으로 날린 샷이 홀인원이 됐다. 그때부터 박 부회장은 그라운드골프에 푹 빠졌고, 그라운드골프 예찬론자가 됐다. “회원들과 함께 어울려 경기를 하고 집에서 가져온 떡과 과일 같은 걸 나눠먹으며 수다를 떨다 보니 우울증이 사라지더군요. 그라운드골프는 정신건강에도 아주 좋아요.”
그라운드골프는 비용이 많이 들지 않고, 배우기도 쉽다. 광진구그라운드골프클럽의 월 회비는 1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최인순(75) 회장은 “많은 사람들이 돈이 많이 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광진구청에서 장비를 지원해 주기 때문에 초기 비용도 들지 않는다”며 “또 규칙이 간단해 누구나 4시간 정도만 배우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회원들은 평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그라운드골프를 즐긴다. 각종 대회에 출전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지난해엔 13개 대회에 출전했다. 2015년엔 3박4일 일정으로 일본 원정을 떠나기도 했다. 대회 출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역시 경비다. 전국생활체육 대축전의 경우 서울시에서 경비를 지원해 준다. 연합회장배대회는 일부만 지원한다. 나머지 대회는 회원들이 모두 부담해야 한다.
서울에서 그라운드골프클럽은 이곳밖에 없다. 이유는 부지 확보가 어려운 데다 홍보도 잘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라운드골프는 지방에서 더 활성화돼 있다. 노인 인구가 많고, 부지 확보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우리 클럽의 회원은 157명인데, 지방 협회의 경우 등록회원 수가 2000명이 넘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안다”며 “서울시에서 더 많은 관심을 가져 다른 구에서도 클럽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 그라운드골프를 즐기는 동호인은 4만여명으로 추산된다. 경기장은 전국에 224개가 있다. 사단법인 대한그라운드골프협회(kgg.sportal.or.kr)의 김정배 사무처장은 “17개 시·도의 회원 단체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며 “그라운드골프를 즐기는 연령대는 다양한데, 60대 후반부터 70대 후반 어르신들이 가장 많다”고 말했다. 이어 “협회 차원의 전국대회가 매년 4개 정도 열리는데, 앞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글=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
공동기획 : 국민일보·대한체육회
[And 엔터스포츠] 건강 되찾고 우울증도 싹~ 어르신, 나이스 샷~
입력 2017-05-05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