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이성기] 수사·기소권 분리가 검찰개혁 출발점

입력 2017-05-03 17:32

주요 대선 후보들이 한결같이 검찰개혁을 약속하고 있다. 우리 국격을 생각하면 대선 핵심공약으로 검찰개혁이 등장한다는 사실이 씁쓸하지만 그만큼 국민들에게 절실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새 정부 초기에 검찰개혁을 확실하게 마무리짓지 않으면 과거 실패를 반복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성공적인 검찰개혁을 위해서는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데,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는 검찰개혁의 출발점이자 전제조건으로서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할 과제다.

수사·기소의 분리는 인권보호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시급하다. 최근 기사에 따르면 2012∼2016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례가 13만여건, 형사보상금으로 지급한 액수가 3000억원에 달한다.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자살 사례도 적지 않다. 검사가 수사관이 아닌 기소관의 눈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기소 여부를 결정했다면 억울한 옥살이피해자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검사가 기소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수록 수사에 대한 객관적 검증과 통제가 강화되기 때문이다. 공수처 설치, 검사장 직선제 등도 검찰개혁을 위한 방안으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약들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지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직접적인 방안은 아니다.

둘째, 수사·기소 분리는 개혁 방안들 중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미 주요 대선 후보 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따라서 대선 이후 전문가 토론회, 위원회 설치 등으로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충분한 논의와 검토가 이뤄졌기 때문에 우리와 사정이 전혀 다른 나라의 제도를 두고 벌이는 소모적인 논쟁도 필요하지 않다.

셋째, 수사·기소 분리는 새 정부가 검찰을 장악하려는 유혹을 끊어버리고 과감하게 검찰개혁을 추진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대선 기간 발생한 각종 고소, 고발, 선거법 위반 사건,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검찰이 수사하게 하면서 검찰개혁을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나 시민들의 고소·고발사건은 수사·기소 분리 전이라도 경찰이 수사를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현재도 대다수 수사를 경찰이 담당하고 있으므로 국민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 대해서는 경찰의 수사 역량을 시험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수사기관과 기소기관 간 건전한 긴장관계가 형성돼 새 정부가 검찰개혁에 대한 주도권을 쥘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검찰개혁 추진 의지가 확고한 인사를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으로 임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검사 출신은 제외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수사·기소 분리를 경찰개혁의 선행 전제조건으로 걸어서는 안 된다. 당연히 경찰의 수사권 독점은 경계해야 한다. 검사의 직접 수사권이 배제되면 경찰이 그만큼 수사 업무를 떠안게 돼 권한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법적인 권한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소관인 검사의 통제가 더 강화될 것이다. 따라서 공수처 설치, 지방자치경찰제 도입 등 추가적인 경찰개혁 조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시간을 두고 추진돼야 할 이러한 과제를 수사·기소 분리를 위한 전제로 내세우는 것은 개혁을 하지 말자는 것과 다름없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는 여러 검찰개혁 방안 중의 하나가 아니라 검찰개혁의 성공을 위한 출발점이다. 따라서 새 정부에 대한 검찰개혁의 의지와 능력을 시험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각 대선 후보는 수사·기소권 분리를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 공약 실현에 대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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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기(성신여대 교수·법학과)